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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선의 세계 오지기행]〈10〉인도 라자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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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12-10 17:57:38 수정 : 2007-12-10 17:5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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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영혼들, 천년 흘러도 머무는 듯…
◇치토르가르 시내에서 본 성.
둘레 36㎞로 인도에서 가장 큰 성인 치토르가르 성 … 파드미니 여왕의 미모에 반한 델리의 술탄 공격으로 여왕과 1만6000여명의 라지푸트 여인들이

불 속으로 뛰어들었다는 슬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 술탄이 거울을 통해 파드미니를 보았다는 여름궁전엔 오래된 거울이 하나 달려 있고…

인도 라자스탄 지방을 여행하다 보면 ‘푸르’라는 지명을 자주 본다. 라자스탄의 주도인 자이푸르, 유서 깊은 호반 도시 우다이푸르, 그리고 푸른색 건축물이 많아 블루시티로 불리는 조드푸르 등이 대표적이다. 푸르는 성(城)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라자스탄 지방에는 많은 성들이 있다.

치토르가르(Chittorgarh)성은 인도에서 가장 큰 성이다. 그 둘레가 무려 36㎞나 된다. 8∼16세기까지 메와르 왕조 라지푸트(Raijput)가 이곳에 성벽을 짓고 살았다. 라지푸트는 왕가의 자손이라는 뜻으로 라자스탄의 지배계급이었다.

라자스탄이라는 지명도 라지푸트들이 사는 땅이란 뜻이다. 왕가의 자손들이라고는 하나 실제 이들은 평민이거나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었다. 페르시아로 이어지는 동서 교역로에 위치한 라자스탄 지방은 잦은 전쟁으로 무사들을 필요로 했다. 지배자들은 무술이 뛰어난 라자스탄 사람들을 뽑아 무사계급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라지푸트는 태어났다. 용맹스런 라지푸트들은 점점 세력을 키워가며 라자스탄의 주인이 되어갔다. 그들은 수많은 성채와 하벨리(귀족들의 대저택)를 건축하며 그들만의 화려한 문명을 꽃피웠다. 
◇치토르가르 부근 분디 성 내부 벽화.

치토르가르 시내에서 올려다 본 성벽은 끝이 없었다. 삼륜차 오토릭샤를 타고 성벽으로 올랐다. 성벽으로 오르는 1㎞ 남짓한 길은 관광객을 태운 오토릭샤들과 소들이 한데 엉켜 인도 특유의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일곱 개의 성문을 통과한 후에야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축제가 있었는지 온몸에 붉은 가루를 뒤집어 쓴 사람들이 성 곳곳을 붉은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라나 쿰바(Rana Khumbha)왕의 궁전이었다. 입구에는 말 일곱 필을 묶어 두는 장소가 있었다. 사람들은 이 성을 다스렸던 메와르 왕조가 태양이 준 왕조라고 믿었다. 태양신을 태우고 가는 데 말 일곱 필이 필요했다고 한다. 망루에는 왕을 위해 항상 음악이 연주되었다고 한다. 메와르 왕조의 가장 뛰어난 왕으로 알려진 라나 쿰바는 시인이자 음악가였다. 그리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많이 지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성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승리의 탑, 비자이 스탐바(Vijay Stambha)도 라나 쿰바가 건축했다. 
◇치토르가르 성에 순례 온 인도 여성들.(왼쪽)◇치토르가르 성의 승리 탑.

9층 높이, 37m로 솟아 있는 이 탑은 구자라트 연합군을 물리친 걸 기념해 14세기에 건립됐다고 한다. 램스톤이라는 붉은 석회암으로 만들어진 탑에는 그 당시의 생활상들이 자세히 조각돼 있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치토르가르 성을 비운의 성으로 만들었던 파드미니 왕비의 궁이었다.

비운의 왕비 파드미니의 이야기는 13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메와르 왕조 라탄 싱 왕에게는 아름다운 왕비 파드미니가 있었다. 파드미니는 워낙 미모가 출중해 그 소문이 멀리 델리까지 퍼져갔다. 이에 델리의 술탄 알라우딘 칼지는 파드미니를 보기 위해 라자스탄으로 쳐들어 왔다. 그러나 파드미니는 쉽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술탄이 계속 파드미니를 만나겠다며 압박해 오자 파드미니는 술탄에게 통보한다.

“나를 만나고 싶으면 먼저 무장해제를 하고, 연못에 비친 모습을 거울을 통해서만 보아야 할 것이다.”

술탄은 그렇게라도 파드미니를 보고 싶었다. 드디어 호수 가운데 있는 여름궁전 계단에 파드미니가 서 있고 건너편 건물 벽면에 거울을 걸어 두었다. 술탄은 거울을 통해 호수에 비친 파드미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파드미니의 미모에 반한 술탄은 결국 라탄 싱 왕을 붙잡아 갔다.

술탄은 파드미니에게 제안을 한다. 나와 하룻밤을 함께하면 왕을 풀어주겠다고….

파드미니는 술탄의 제의를 받아들인다. 파드미니는 꽃가마 150대를 준비하고 시녀들과 함께 술탄의 진영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꽃가마에는 시녀들 대신 병사들이 숨어 있었다. 파드미니와 시녀들이 온다는 소식에 술탄은 물론이고 병사들까지 해이해진 틈을 타 붙잡힌 왕을 구출해 돌아올 수 있었다. 
◇파드미니 왕비가 서 있었던 여름 궁전.

이에 격분한 술탄은 치토르가르 성을 총공격했다. 성이 점령당할 무렵 파드미니 왕비와 라지푸트 부인들은 아이들을 피신시킨 후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고 장작더미 속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그 수가 무려 1만600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들의 죽음을 지켜본 라지푸트들은 부인들의 재를 이마에 바르고 장렬히 싸우다 전사했다. 사람들은 이 죽음의 의식을 조하르(Johar)라고 불렀다.

조하르가 행해졌다는 장소는 지하통로로 이어져 출입을 금하고 있었다. 불속으로 장렬히 뛰어들었던 파드미니와 1만6000의 슬픈 영혼들이 천 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도 이곳에 머무는 것 같았다. 비련의 주인공 파드미니가 살던 궁은 축제를 끝낸 인도인들의 발길로 북적이고 있었다. 술탄이 거울을 통해 파드미니를 보았다는 건물에는 오래된 거울 하나가 걸려 있었다.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여름궁전 계단에 마치 파드미니가 서 있기라도 한 듯 거울 앞을 떠나지 않았다. “그 당시 거울이냐”는 관광객의 질문에 파드미니의 슬픈 사연을 들려주던 현지 안내원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내들의 재를 이마에 발랐던 라지푸트의 후예들인가? 이마에 칠을 한 사내들이 호숫가에서 기도하고 있다. 조하르 의식으로 세상을 떠난 슬픈 영혼들에 대한 기도였으면 좋으련만….

라자스탄의 슬픈 역사 조하르는 이제 라자스탄의 신화가 되어 노래로, 극으로, 후세 사람들에게 전해져 오고 있다.

여행작가


[여행 정보]
인도의 델리에서 자동차나 기차로 우다이푸르, 분디, 코타 등으로 간 후 그곳에서 치토르가르까지 로컬버스를 이용한다. 우다이푸르에서는 112㎞, 코타에서는 190㎞, 분디에서는 150㎞ 떨어져 있다. 성 내부는 워낙 넓어 걸어다니기 힘들다. 오토릭샤를 이용하거나 자전거를 빌려 돌아볼 수 있다. 치토르가르에 가면 꼭 시간을 내어 코타성에 들러 보길 바란다. 인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벽화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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