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촌이 58세로 운명하자 자손들은 한양에서 멀지 않은 경기 광주에 안장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묘 앞을 지나는 사람마다 자리가 심상찮다며 수군거렸다. 효성이 극진했던 둘째아들 지재(止齋) 권제(1387∼1445)는 당시 한양에서 유명한 풍수지관의 권유를 받아들여 충북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능안 마을로 이장을 결심했다. 양촌이 죽은 지 31년 후 세종 22년(1440) 더없이 좋은 날을 받아 지방수령 현감 등 벼슬아치들이 인산인해를 이룬 가운데 이장을 했다.
유골이 안장될 광중을 파고 있을 무렵 난데없이 어린 동자승 하나가 표주박을 들고 헐레벌떡 상주인 지재 앞에 다가 섰다.
“우리 큰스님이 갈증 나신다고 물 한 바가지 얻어 오라 해서 왔습니다.”
지재가 대경실색했다. 더욱 놀란 건 천하명당을 잡았다며 은근히 재고 있던 지관이었다. 하마터면 목이 달아날 판이다. 이때 지재는 우찬성으로 전국의 고을 수령방백들이 벌벌 떨 지위에 있었다. 안색이 주토(朱土)빛으로 변한 지관이 호통 치면서 나섰다.
| ◇양촌 삼대 위패를 봉안한 안동 권씨 문충공파 사당. 후손들 간 문중 화합으로 향사(香祀)가 끊이지 않고 있다. |
“네 이놈, 감히 예가 뉘 앞이라고 광중에 물이 나온다며 물을 얻으러 왔느냐? 목숨이 아깝지 않으냐!”
“큰스님께서 몇 삽만 더 파면 물이 펑펑 솟을 것이라며 그때 물을 얻어 오라 분부하셨습니다.”
동자승은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건너편 나무 밑에 누워 잠자고 있는 노승을 가리켰다. 몸 둘 바를 모르던 지관과 유생들이 얼른 달려가 노승을 끌어다 상주 앞에 대령시켰다. 지재가 근엄하게 물었다.
“노승은 어찌하여 요상스러운 망언으로 우리 자손들을 불효막심하게 하오!”
“산승이 먼 길을 걸어 갈증이 심하던 차 땅 파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산세와 용맥을 짚어 보니 틀림없이 물 나올 자리여서 우물 파는 줄 알고 물 한 바가지 얻으러 보낸 것입니다.”
노승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광중의 수맥이 터지면서 물길이 치솟았다. 지재가 노승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대사께서 광중에 수맥이 있음을 알았으면 비방책도 알고 계실 테니 제발 불효만은 면하게 해 달라”고 매달렸다.
“이 혈장은 저 앞산에서 돌아 내려온 회룡고조혈로 수맥 또한 함께 이어진 것입니다. 안산의 봉(峰) 밑에 샘을 파면 물길이 끊겨 당판의 물이 멈출 것입니다.”
곧장 인부들이 건너편 산에 달려가 땅을 파니 물길이 솟아올랐고 광중에서는 즉시 물이 멈췄다. 모두가 놀라 노승을 찾았으나 이미 동자승과 함께 홀연히 사라진 뒤였다.
| ◇삼대 묘 중 맨 아래 위치한 권남 묘. 전순이 짧아 급한 것이 아쉽다. |
전설 같은 얘기지만 현재까지도 안동 권씨 문중에서는 안산 아래의 샘물 길이 막히지 않도록 잘 관리하고 있다. 문중에서는 이 묘를 산신령이 점지해 준 것으로 믿고 있다. 양촌을 이곳에 이장한 후 지재 둘째아들 소한당(所閑堂) 권남(權擥 1416∼1465)이 좌의정 자리에 올랐으니 천하제일 명당임엔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한국풍수지리중앙회 거봉 김혁규 회장과 그를 따르는 제자들과 함께 떠나는 간산 길은 항상 풍성한 내공(內功)을 교환할 수 있어 좋다. 거봉이 신령한 노스님 말대로 파놓은 샘에 가 보았느냐고 묻는다. 이곳의 취재길이 초행이라고 하자 자신은 몇 차례 들러 확인했단다. 그러고는 옛적 큰스님의 비법도 터득하고 나면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풍수비책이라고 강조한다.
권근, 권제, 권남…. 조선 초기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중신(重臣)들로 안동 권씨 문중을 빛낸 조손(祖孫) 3대의 대표적 인물이다. 이들의 묘가 명당으로 소문난 가운데 충북 음성의 옛터 그대로 600년 세월을 자리하고 있다. 거봉이 마을 이름과 연관된 유래부터 풀어 놓는다. 예부터 전국 각지의 고을 지명 표기에 기세(氣勢)나 물형을 상징하는 깊은 뜻이 담겨 있음은 익히 알아온 터다.
“이 마을 지명이 ‘놓을 放(방)자’에 ‘소 丑(축)자’를 쓰는 방축리 입니다. 소를 놓아먹이는 곳이란 의미지요. 소를 상징하는 물형에서는 와우혈(臥牛穴)이 단연 최고입니다. 소가 일을 마치고 실컷 풀을 뜯고 난 뒤 쉬는 국세지요. 양촌 선생 혈처는 와우혈 중에서도 유방 위치에 해당하니 더 말할 게 뭐 있습니까?”
| ◇용맥이 시발하여 대혈을 작국한 뒤 다시 혈장을 내려다보고 있는 안산 격의 수리산. 길 가던 노승이 광중에 솟는 물을 멈추게 한 전설의 샘이 있는 곳이다. |
양촌 묘역에 올라 안산 격인 수리산을 바라보니 과연 회룡고조혈이다. 노승의 말을 듣고 샘을 판 뒤 법도와 이치를 고쳤다 하여 수리산(修理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는 안산이 장중하다. 내청룡을 이루며 가늘게 환포한 끝자락이 누운 소의 꼬리 부분이고, 우백호 머리가 자신의 유방에 해당하는 혈처를 지켜보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양촌 묘 좌향은 해좌(북→서로 30도)사향(남→동으로 30도)으로 남향에 가깝다. 물길을 재보니 축간(북→동으로 37.5도)향 득수(물길이 처음 비치는 곳)로 물이 안 보이는 파구가 정(남→서로 15도)방향이다. 600년 전 노스님이 무슨 연고로 동쪽 방향에 샘을 파라고 했는지가 궁금해졌다. 거봉의 해법은 의외로 간명했다.
“이 기자의 연재 기사에도 여러 번 언급돼 익히 알고 있는 삼합오행(三合五行)법으로 풀면 됩니다. 양촌 선생 묘 좌향이 해좌이고 파구가 정향(丁向)이니 해묘미(亥卯未) 목국(木局) 아닙니까. 그래서 묘방인 동쪽 물길을 뚫으니 해방(혈처)에 솟던 물이 멈춘 것입니다. 수국삼합법(水局三合法)이라고도 하며, 세 방향을 선으로 연결하면 정삼각형이 되지요. 그래서 샘을 동쪽인 묘방에 정확히 파 놨습니다.”
땅의 이치가 이러하거늘 누가 풍수를 사술(詐術)이라 이르겠는가. 삼합오행은 좌(坐) 득수(得水) 파구(破口)가 합(合)이 되어 삼각형을 이루면 대길하다는 지술(地術)로, 비석이나 일반 사(砂)들을 배치할 때 긴히 활용하는 향법이다. 목화토금수 가운데 토는 중앙을 차지해 제외되고 목국(건해·갑묘·정미) 화국(간인·병오·신술) 금국(손사·경유·계축) 수국(곤신·임자·을진)의 사대국만 가려 쓴다. 사대국의 지칭은 중앙의 자(북쪽·물) 오(남쪽·불) 묘(동쪽·나무) 유(서쪽·금속)의 상징성에서 비롯된다. 이때 건해·갑묘·정미 등은 동궁쌍산(同宮雙山)이라 하여 같은 좌향이다.
| ◇묘역 앞 방축저수지. 제방 수축으로 인한 저수용량 증가로 진응수라 부르기엔 규모가 크다. 멀리 보이는 삼대 신도비가 가을빛에 유려하다. |
예를 들어 분묘 좌향이 묘좌유향일 경우 미(未) 방향에서 물이 보이고 해(亥) 방향에서 물이 안 보이면 가장 좋다는 풍수 향법이다. 이런 법수 풀이에 어긋남 없이 양촌 지재(임좌병향) 소한당(해좌사향) 차례로 3대 묘가 용사돼 있다. 여러 후손 중에서도 높은 관직에 올라 출세한 아들 손자만 양촌 묘 아래 자리하고 있다. 사람이 한 생을 영위하면서 출세간 의미를 곰곰이 되새겨 볼 묘역이다.
권근은 고려 공민왕이 죽자 위험을 무릅쓰고 포은 정몽주, 삼봉 정도전 등과 배원친명(排元親明) 정책을 주장하며 수차례 옥사를 치렀고 이 태조의 왕조 창업을 도왔다. 성리학자로 목은 이색의 제자였으며 경학과 문학에도 밝아 고려 말 학풍을 일신시켰다. 경서를 그림으로 풀어 해석한 ‘입학도설’과 함께 900수가 넘는 시를 남겼다. 권제는 집현전 부제학으로 훈민정음 창제에 공헌했고 고려사를 편찬하면서 정인지, 안지 등과 용비어천가를 지어 바친 문신 학자이다. 권남은 한명회와의 관포지교(管鮑之交)로 유명하며 뜻이 크고 기책(奇策)이 많았다. 단종 1년(1453) 수양대군이 계유정란으로 정권을 탈취할 때 정난 일등공신이 되어 온갖 부귀영화를 향유했다. 죽은 후 세조 묘정에 배향되었다.
권제가 아버지 권근 묘를 이장하며 길일을 택했듯이, 예로부터 국가나 가내 대소 길흉사에는 엄격한 택일 절차를 밟았다. 근자에는 이삿짐센터나 부동산 업계는 물론 가구점에서도 택일법을 익혀 소비자들의 기대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집 짓는 일이나 결혼식은 물론 안장일도 반드시 가려서 쓴다.
택일법은 천기대요에 따른 것에서 독자적 비법에 이르기까지 수십 가지가 있으나, 보편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 황도(黃道)택일법이다. 황도법은 월(月)에서 일진을 찾고 일진으로는 시(時)를 찾아보는 방법으로 누구나 쉽게 활용할 수 있다. 달력이나 만세력에서 다음의 일진을 찾으면 황도일로 대길한 날이다. 여기서 월의 표시는 음력이다.
▲1·7월=자 축 진 사 미 술 ▲2·8월=인 묘 오 미 유 자 ▲3·9월=진 사 신 유 해 인 ▲4·10월=오 미 술 해 축 진 ▲5·11월=신 유 자 축 묘 오 ▲6·12월=술 해 인 묘 사 신.
양촌 삼대 묘 당판에는 장명등과 문인석(한 쌍)이 세월의 이끼를 머금은 채 바로 앞 방축저수지를 내려 보고 있다. 새로 쌓은 제방으로 저수량이 너무 많아 진응수라 부르기엔 규모가 크다. 옥의 티라면 맨 아래쪽 소한당 묘 전순(氈脣) 경사가 급해 마음에 걸린다.
시인·온세종교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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