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을 강경하게 거부하는 여자(영혜)를 내세워 작가의 오랜 고민인 ‘인간이란 뭘까’를 독하게 탐구했다. 한씨는 “바닥까지, 끝까지 밀어붙여 봤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채식주의자, 아니 ‘육식 혐오주의자’ 영혜의 자기파괴적 행동은 극단적이고 기괴해 보인다. 하지만, 영혜의 행위는 실성한 모습이 아니라 인간 심연에 내재한 폭력성을 씻어버리기 위한 자기구원에 가깝다.
소설집에 실린 3부 연작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에서는 “내가 인간인 게 싫어”라는 선득한 메아리가 울린다. 연작의 첫 단추 ‘채식주의자’는 남편의 독백을 통해 영혜가 채식을 고집하는 연유를 드러낸다. 평범한 주부 영혜는 어느 날 꿈에서 핏빛 환영을 본다. 꿈은 어릴 적 영혜에게 상처 입힌 개를 무참히 죽인 아버지의 야만성과 연결돼 있다.
“녀석의 덜렁거리는 네 다리, 눈꺼풀이 열린, 핏물이 고인 눈을 나는 보고 있어.”(53쪽)
갑자기 영혜는 모든 육류를 입에 댈 수가 없다. 미라처럼 말라가는 영혜에게서 남편과 친정 식구는 공포감마저 느낀다. 다혈질 아버지는 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완력으로 딸에게 고기를 먹이고, 격분한 영혜는 과도로 손목을 자해한다.
‘몽고반점’은 영혜의 형부인 비디오 아티스트 ‘나’의 관점에서 기술된다. ‘나’는 예술에서나 인생에서나 환멸만 맛보며 시들시들 늙어가는 중년이다. 어느 날 ‘나’는 아내에게서 처제의 엉덩이에 남은 몽고반점 이야기를 듣고, 열정을 되찾는다. 유별난 채식주의 탓에 남편과 이혼한 처제는 알몸에 꽃을 그리고 싶다는 ‘나’의 제의를 선뜻 받아들인다. ‘나’는 영혜의 나신(裸身)을 꽃그림으로 장식하고 비디오 테이프에 담는다. 급기야 자신의 몸에도 꽃을 그려 처제와 살을 섞는다.
완결편 ‘나무 불꽃’은 정신병원에 갇힌 영혜를 보살피는 언니 인혜의 이야기다. 영혜는 영양 주사 맞는 것도 거부한 채 나무로 변할 준비를 한다.
“나는 이제 동물이 아니야 언니(…) 밥 같은 거 안 먹어도 돼. 살 수 있어. 햇빛만 있으면.”(186쪽)
인혜는 아사(餓死) 직전인 영혜를 수발하며 자신에게도 내재된 어두운 충동과 공격성을 인식한다. 동생과 남편이 벌인 기행은 더 이상 “성적인 것”이 아닌 “사람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장편으로 묶어야 본 그림이 드러나는 작품이었어요. 생각지 않게 ‘몽고반점’이 문학상을 받는 바람에 전후 맥락 없이 읽혔는데, 영혜와 형부의 일탈적인 교합이 탐미주의로 비칠 수 있어요. 단지 둘은 ‘인간’을 벗어나고 싶었을 뿐인데요.”
연작소설은 10년 전 발표한 단편 ‘내 여자의 열매’를 부풀리고, 변주한 작품이다. 단편에서는 주인공이 문학적 상상력에 힘입어 실제 나무로 변신한다. 여기서 뼈대를 빌린 장편 ‘채식주의자’는 식물이 되고 싶은 여자를 현실화해 육식 세상과의 갈등을 극대화했다.
그는 올가을 계간지 ‘문학과사회’ 가을호에 장편 ‘바람이 분다, 가라’를 분재하기 시작했다. 한 화가의 죽음을 소재로 인간의 성스러움과 이를 훼손하는 현실을 그릴 생각이다. 그의 관심은 이제 인간의 어두움에서 숭고함으로 옮겨갔다.
“‘채식주의자’는 2002년 겨울에 써서 2005년에 끝냈어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책이 지금에야 묶였을 뿐이에요. 극단까지 밀어붙여 끝을 봤으니까, 이제 다른 이야기를 해야지요.”
글·사진 심재천 기자 jaysh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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