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와인의 경우엔 12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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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순 WSET 대표강사 |
“냉장고에 보관하셨나요?”(필자)
“아니요, 그냥 바깥 보관 창고에 두었는데요.”(레스토랑 점원)
“그런데 왜 이렇게 차죠?”(필자)
나는 애기를 안듯이 와인 병을 꼭 끌어안고 와인의 온도를 올려보겠다고 남과 다른 행동으로 티를 냈다. 아마 그날 그 점원은 그 여자 참 별나게 군다며 속으로 흉을 봤을지도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화이트 와인은 서빙 온도가 8∼10도가 적당하지만, 오크 풍미도 있고 좀 바디감이 있는 부르고뉴 화이트나 프리미엄급의 고급 화이트는 너무 차가우면 그 풍미가 살아나지 않으므로 12도 정도가 좋다.
화이트류의 와인을 차게 서빙하는 이유는 산도와 조화를 이룬 상큼한 과일 맛을 즐기는 데는 차가운 것이 낫기 때문이다. 신맛은 온도가 올라가면 시큼하게 느껴지고 단맛은 온도가 올라가면 그 단맛이 지나치게 두드러질 수 있다. 그러므로 스위트 와인은 온도가 올라가면 단맛이 지나치게 진하게 느껴지므로 일반 화이트보다 좀 더 차게 마시는 것이 낫다. 샴페인과 같은 스파클링 와인들은 상쾌한 탄산가스의 느낌을 즐기기 위해 6∼8도 정도가 적절하다.
냉장고에 와인을 넣어 칠링시키려면 2∼3시간 정도 충분히 시간적 여유를 가져야 한다. 한 시간 정도 냉장고에 넣었다가 병을 만져보면 표면이 차갑게 느껴지지만 아직 준비가 안 된 상태다. 유리병의 속성상 표면만 차가울 뿐 그 안의 와인이 충분히 차가워지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에 비해 레드 와인은 17∼18도 정도로 해서 마시면 좋다. 이 온도는 병을 뺨에 대어 봤을 때 서늘하게 느껴지는 정도이다. 레드 와인 음용 온도가 화이트 와인보다 높은 것은 차가운 온도에서 서빙되면 입안에서 다양한 부드러운 풍미나 맛 대신 쓴맛만 강조되고 타닌은 두드러지게 떫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분 공기와 섞이면서 많이 발산되는 여러 향들이 온도가 너무 낮으면 제대로 뿜어져 나오지 않으므로 화이트보다 온도를 좀 높게 해서 마시는 게 좋다.
부르고뉴 레드나 피노 누아는 잔에 따랐을 때 일반 레드보다 조금 낮은 온도, 즉 16도로 서빙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탄닌이 적고 상큼한 과일 향이 풍부하여 화이트 와인과 비슷한 보졸레 같은 가벼운 레드는 12도에서 15도 정도가 알맞다.
와인 한잔을 마시는데 왜 이리 어렵고 까다로운가 불평도 나오지만 처음 몇 번만 신경 쓰면 적당히 와인 온도를 맞추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아무리 좋은 재료로 일류 요리사가 만든 음식도 적절한 온도로 서빙되지 않으면 100% 그 맛을 다 보여줄 수 없듯이 아무리 고급 와인도 온도가 맞지 않으면 그 특성을 제대로 음미할 수 없다. 평범한 와인이라도 온도를 적절히 맞춰 즐긴다면 그 즐거움이 배가 될 수 있다.
WSET 대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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