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트럭이 길가 주유소에서 정거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주유소 주인은 또 술과 음식을 파는 도로변 식당의 주인이기도 한데 중년의 뚱뚱보다. 트럭에는 한 뜨내기가 누워 있다가 내려서 곧장 식당으로 들어간다. 카운터에서 노크해도 반응이 없자 곧 주방으로 들어가 음식을 집어먹는다. 마루에 앉아 매니큐어를 하던 젊은 여성에게 뚱뚱보와 무슨 관계냐고 묻는다. 남편이라고 하자 이런 아내를 가진 그는 참 행운아라고 비위를 맞추면서 연방 음식을 집어먹는다. 이런저런 사연 끝에 뜨내기 지노는 고장 난 차에서 회전축을 빼내고 부품을 사와야 한다고 말한다. 주인은 부품을 구하러 출타하고 그 사이 지노는 2층 침실에서 주인 아내 조반나와 정사를 나눈다. 조반나는 한눈에 반했다고 실토하고 지노는 눈빛으로 알았다며 함께 도망치자고 말한다.
처음 망설이던 조반나는 지노와 함께 집을 나서지만 중간에 되돌아온다. 안정감 없는 생활이 불안해서다. 얼마 후 세 사람은 이웃 고을의 축제장에서 다시 마주친다. 세 사람이 탄 차를 술 취한 주인이 운전하다가 차가 전복해서 주인은 죽고 조반나와 지노는 무사하다. 경찰은 사고사로 결론짓지만 뒷조사는 계속한다. 식당을 팔고 딴 곳으로 가자는 지노와 밴드를 들여와 실속을 차리는 조반나 사이에 언쟁과 갈등이 생긴다. 그러던 중 남편이 보험에 가입한 사실을 알게 되고 그 때문에 보험금을 타게 되었다는 조반나의 말에 지노는 이용당했다며 언쟁이 벌어진다. 두 사람은 우여곡절 끝에 다시 화해하고 지노 측에서도 사랑을 확인한다. 두 사람이 자동차를 몰고 가는데 앞서 가는 화물차의 매연을 피해 추월하려다가 자동차가 추락하여 조반나는 죽고 지오는 추적 중이던 형사에게 연행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이스파란 또 한 사람의 뜨내기가 등장해서 떠돌이 세계의 일면을 보여준다.
안정된 생활을 바라서 결혼했으나 인색하고 일만 시키는 남편에게 넌더리를 내던 조반나의 대담한 사랑 행각은 결국 세 사람의 파멸로 끝난다. 시종일관 대수롭지 않은 듯이 파멸에의 길로 접어드는 세 사람의 삶이 담담하고도 실감 있게 전개된다. 무대나 인물이나 별 희망이 없는 회색의 공간에서 전개되는 듯한 느낌이다. 적당히 교활하고 적당히 선량한 서민들의 가난과 생기 없는 나날의 삶과 그 세목이 화면에 그뜩해서 생활현실 한복판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이 든다. 노래자랑이 벌어지는 술집이나 구닥다리 소형차나 남의 방을 엿보는 꼬마아이나 모두 질박하고 그럴 법하다. 이 한 편만 보고도 네오레알리슴의 실체를 접했다는 감을 받을 것이다.
이 영화는 미국 작가 제임스 케인이 1934년에 발표한 소설 ‘포스트맨은 두 번 벨을 울린다’를 극히 자유롭게 각색한 작품이다. 케인은 헤밍웨이에 빚진 바 많다는 것을 실토하는 작가로서 몰 도덕적인 남성과 관능적인 여성들을 즐겨 다루었다. 이 소설을 기초로 한 영화는 서너 편이 있고 40년대에 나온 미국 영화에서는 라나 타나가 여주인공으로 나와 호평을 받았다. 요즘엔 그렇지 않지만 미국에서 한동안 우체부가 우편물을 편지함에 넣고 나서 벨을 두 번 울리는 관행이 있었고 제목은 거기서 나온 것이다.
밀라노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비스콘티는 호강스러운 유소년 시절을 보냈다. 초등교육은 가정교사에게서 받았고 중학 때는 모친에게서 음악, 영국인에게서 체육교육을 받았다. 집에서 콘서트가 열리면 모친은 피아노를 연주하고 부친은 바리톤으로 노래했다. 공작이었던 부친은 밀라노 예술 연극단을 만들었고 비스콘티는 이때부터 연극과 깊은 인연을 맺는다. 프랑스의 감독 장 르놔르를 만나 조수 노릇을 한 것이 큰 경험이 되었고 이때 만난 이들의 영향으로 정치적 좌파가 되었다. 자기 묘비명에 “셰익스피어와 체홉과 베르디를 사랑해 마지않았다”고 써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생전에 한 일이 있는 그는 임종 직전에 브람스의 교향곡 2번을 되풀이 들었다는 등 많은 일화를 남겼다. ‘강박관념’은 본래 ‘늪’이란 제목이었으나 바뀌었고 여주인 역은 안나 마냐니에게 맡겼으나 임신으로 클라라 카라마이가 맡았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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