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 역으로 발탁된 사람이 하필이면 자신에게서 교통 위반 딱지를 떼어갈 정도로 단순한 교통과 순경 정도만(정재영)인 것이다. 철두철미하게 강도 역할을 해내려는 정도만과 그를 잡고야 말겠다는 분노감에 불타는 이승우는 시간이 지날수록 진정한 ‘돌아이’의 면모를 뽐낸다.
세상에는 이렇게 태어난 사람들이 있다. 무슨 일을 하던지 강직하게 내 할 일만 묵묵히 하는 사람. 바보 취급을 당할지라도 항상 한 길을 가는 사람. 정도만은 가상의 현실 속에서 8명을 죽이고 한 명을 강간한 은행 강도가 됐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괴로워한다. 강도 역할을 정말 잘 수행했다는 인질의 말에 씁쓸해하는 그의 모습은 웃기면서도 가슴 한편이 찡해진다.
이렇게 실컷 웃다가도 우리 주변의 바보들을 다시보게 하는 것은 이 영화의 힘이다. 정도만을 연기한 정재영은 우리 주변의 ‘돌아이’들에게 우직한 이미지를 불어넣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라희찬 감독의 데뷔작이라고 하기엔 신선한 매력이 덜하다. 감각적인 분할 연출, 웃음코드, 배우 정재영까지 장진 감독의 분위기가 그대로 살아 숨쉰다. 라 감독이 장진 감독의 연출부 출신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더도, 감독 특유의 영상을 찾아 볼 수가 없어 아쉽다. 15세관람가, 18일 개봉.
스포츠월드 최선아 문화프런티어 enter@sportsworldi.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