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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진의 冊갈피]출판 편집자에 대한 예의

입력 : 2007-10-06 12:17:00 수정 : 2007-10-06 12: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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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에 1인 출판사나 그에 버금가는 임프린트(Imprint: 전문 편집자의 기획·출판과 출판사 영업·마케팅 협업)사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건 이제 뉴스거리도 아니다. 처음엔 그저 개성 강한 편집자가 ‘나도 독립이나 한번 해볼까’ 치기를 보인다거나 ‘또 사고 치는구나’라고 단순하게 생각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 해를 넘겨 기자로서 출판계를 기웃거려 보니 ‘꼭 그것만은 아니다’는 결론 아닌 결론에 도달한다.
어쩌다 만나는 편집장들은 하나같이 “편집장 몇년, 주간 몇년 하다 보면 사주 눈치, 후배 눈치에 슬며시 자리를 내줘야 한다”고 하소연한다. 어떤 곳은 ‘사주 자녀가 몇 살인지, 출판에 관심이 있는지를 살피는 일도 편집기획 못지않게 신경 쓰인다”고 귀띔한다. 실제 몇몇 중견 출판사는 이미 자녀를 내세운 후계체제를 끝마쳤거나 진행 중이다. 심지어 전문 편집자에게 발행인 자리까지 물려준 편집·경영 분리의 선구적인 출판사도 이를 철회하려는 움직임마저 감지되고 있다.
자신이 젊었을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는 애제자 안회(顔回 521∼490 BC)를 보곤 “후생(後生)이 가외(可畏)로다” 하고 중얼거린 공자나 “종신교수는 대학에서 시장경제에 대해 무엇을 강의할 수 있을까?” 하고 힐난한 미국 컴퓨터 네트워킹업체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스콧 맥닐리 회장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편집장의 직책 수명은 이런저런 이유로 점점 단축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분명 출판계로선 엄청난 자산의 손실이다. 짧아도 십수년을 쌓아온 해당 분야의 노하우는 물론 출판에 대한 애착·애정까지 몰아내지 않을까 우려된다. 딴살림을 차린 편집장 중 십중팔구는 투자금만 날린다.
이러한 때 편집자와 영업인의 사연을 담은 ‘책으로 세상을 움직이다’(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 실린 인문학 전문 소명출판 박성모 대표의 남다른 ‘소명감’이 독서의 계절을 맞아 심금을 울린다.
“내가 인문학 출판에 매달리는 이유는 첫째, 하나의 각주를 추적하기 위해 며칠 밤낮을 결판 낸 저자에 대한 예의 때문이고, 둘째는 내가 만든 책에 언젠가 눈길을 줄 독자에 대한 예의 때문이고, 셋째는 출판이 천성이자 팔자인 나에 대한 예의 때문이다.”
“아무리 인문학의 위기라고는 하지만 인큐베이터로 배양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그의 외곬 속에서 참편집자, 참출판인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문화팀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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