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생에서 청년 운동가로=유 후보는 1959년 경주에서 태어났다. 지방에서 박봉의 역사교사를 지낸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생선과 야채를 팔아 생계를 꾸려나갔다.
어린 시절 그는 부모를 위해 판검사가 되기를 희망한 ‘모범생’이었지만, 서울대 입학 이후 법조인의 꿈을 접고 ‘투사’의 길로 들어섰다. “구로공단 봉제공장의 열여섯 꽃 같은 처녀가 일주일에 60시간씩 일해 한 달 버는 돈이 대학촌의 하숙비보다 적은” 현실에 눈을 뜨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것이다.
그는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으로 시위를 주도해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석달 만에 석방됐지만 바로 신체검사를 받고 입대했다.
제대 후 3학년에 복학했지만, 복학생협의회 회장으로 활동하던 중 시민을 정보기관원으로 오인해 불법 감금한 ‘서울대 학원 프락치 사건’이 터졌다. 그는 사건의 주도자로 보름만에 다시 구속됐다.
◆뛰어난 문장력과 언변=서울대 프락치 사건은 전화위복이 됐다. 이때 쓴 ‘항소 이유서’가 그를 일류 ‘논객’의 반열에 올려놨기 때문이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네크라소프의 시구로 끝을 맺은 항소 이유서는 형의 경중 문제보다 사회부조리에 초점을 맞췄다. 투철한 신념을 담담하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당시 운동권 학생들 사이에서 ‘필독서’가 됐다.
논리적으로 파고들어 상대 주장을 무력화하는 유 후보는 ‘토론하기 가장 부담스러운 정치인’으로 꼽힌다. MBC 100분 토론 진행자 시절, 특유의 날카로움으로 좌중을 압도하며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그는 지금까지 ‘대한민국 개조론’을 비롯해 ‘거꾸로 읽는 세계사’ ‘경제학 카페’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등 다수의 저서를 내놓았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지금까지 60만부가 팔린 스테디 셀러다.
◆노무현의 남자로 정치권에 뛰어들다=졸업 후 1988년 이해찬 의원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해 정치 감각을 익혔다. 이후 20년간 정치권에 발을 담그고 살았지만 정치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시사평론가로서 전성기를 구가하던 2002년, 민주당에서 노무현 대선후보 흔들기가 계속되자 ‘노무현 지킴이’를 자청하고 나섰다. ‘악다구니’를 쓰는 정치인으로 변신해 고비 때마다 노 대통령을 적극 엄호했다. ‘노무현의 정치적 경호실장’이라는 훈장을 단 것은 이 시기부터다. 당시 개혁국민정당을 창당, 인터넷 등을 통해 몇만명의 젊은 층을 순식간에 결집하는 등 세를 과시했다.
2003년 재보궐 선거를 통해 국회 입성에 성공한 유 후보는 정당·정치 변화를 강력하게 주장하며 ‘개혁의 전도사’를 자임하고 나섰다. 열린우리당 지도부에 대해선 “‘궁정정치’를 하고 있다”는 등 끊임없이 비판의 총대를 멨다.
◆변화 시도=최근 유 후보는 대선을 준비하며 ‘둥글게 유시민’이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지금까지 ‘친노’ ‘독설가’로 존립 기반을 형성했던 그가 정책, 통합을 외치며 정치 인생의 새 장을 열려고 한다. 유 후보가 10일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에 대해 정부가 일정 부분 양보할 것을 노 대통령에게 공개 제안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그는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은 큰 방향에서 맞고 대통령의 문제의식에 공감하지만, 불필요한 감정적 충돌은 정부·언론 간의 건강한 긴장관계에 도움이 안 된다”고 밝혔다. 2004년 총선 때 열린우리당에 있는 기자실 폐지 시도를 주도했던 점을 감안하면 변화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유 후보의 정책비전은 ▲선진통상국가론 ▲사회투자국가론 ▲선도평화국가론 등 3대 국가발전전략으로 요약된다. 선진통상국가론은 우리나라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수출주도형 경제 이후 통상국가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게 됐다는 진단에서 출발한 것으로, 외국과의 FTA(자유무역협정)를 확대해 ‘큰 시장’에서 국부(國富)를 창출해야 한다는 논리를 갖고 있다. 구체적으로 북한 및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등과 동시다발적 FTA를 추진하고 GDP의 3.5% 이상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하며, 20대 미래산업과 10개 세계 최고기업을 육성하겠다는 공약이 여기 포함된다.
정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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