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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 튄 몽골인 요코즈나… 日 자존심이 무너졌다

입력 : 2007-08-25 16:31:00 수정 : 2007-08-25 16: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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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모 최강자 아사쇼류 ''거침없는 행보''에 日열도 발칵 일본 씨름 스모의 최강자 ‘아사쇼류(朝靑龍·26)’ 소동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타고난 체력과 민첩한 두뇌로 일본 스모계를 장악한 몽골계 아사쇼류가 ‘외도’했다는 이유로 스모 팬들의 집중포화를 받고 있다. 은퇴설까지 나돈다. ‘외도’란 아프다는 핑계로 중요 연례행사인 전국순회경기에 빠지고 고향 몽골로 날아가 축구시합에 출장한 것을 가리킨다. 육중한 몸으로 내달리는 장면이 일본 스포츠 기자들의 카메라에 포착된 게 빌미가 됐다. 거구가 헤딩하느라 자빠지고 깔깔대며 웃는 모습이 일본 전역에 방영됐다. 내로라하는 일본인 선수들을 모조리 씨름판에 무릎 꿇린 뒤 고향 몽골에서 축구나 하는 아사쇼류에게 일본 스모팬들이 배신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일본 상업 방송들은 이 모습을 지난 7월 하순부터 지금까지 종일 공중파로 쏘아대기에 바쁘다. 보수 신문들도 덩달아 ‘요코즈나의 품격과 자질’을 거론하며 비판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국민들의 거센 비난에 당황한 일본스모협회는 아사쇼류를 몽골에서 소환해 올해 남은 2경기 출장 정지와 30% 감봉, 11월까지 근신이라는 초유의 징계를 내렸다. 하지만 아사쇼류 비판은 잦아들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는 아사쇼류는 우울증에 수면장애까지 겹쳐 ‘스트레스 장애’라는 정신과 의사 진단까지 받기에 이르렀다.
◆현대 최고의 스모 선수
아사쇼류는 현대 스모 사상 최강의 ‘리키시(力士)’로 꼽힌다. 이 선수를 꺾을 자는 당분간 나타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마디로 이 시대 최고의 ‘요코즈나’로 꼽힌다. ‘요코즈나’는 스모 선수가 오를 수 있는 최고 등급이다. 아사쇼류의 전적은 기나긴 일본 스모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화려하다. 프로입문 4년 만인 2003년 5월 제68대 요코즈나에 오른 이후, 2005년 7차례 연속 우승(종전 최고 기록은 6차례), 연간 전적 84승6패(종전 최고 기록은 82승8패)로 각종 신기록을 세웠다. 그는 첫 우승 이후 가장 짧은 시간 내에 20차례 우승을 달성하면서 스모계를 평정했다.
지난 7월23일 나고야에서 끝난 대회는 인상적이었다. 그가 통산 21번째 우승을 거머쥔 순간이었다. 스모 선수로는 비교적 단신인 키 185㎝의 아사쇼류가 200㎝가 넘는 거한 고토오슈를 씨름판 위에 패대기치는 장면에서 일본 스모계는 공포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스포츠 신문들은 전했다. 현재 그를 대적할 라이벌이 일본 국내외를 막론하고 뚜렷이 부각되지 않고 있다. 한창 왕성한 나이를 감안하면 앞으로 일본인 스모 스타들이 세운 모든 기록들을 새로 작성할 것으로 보인다.
아사쇼류의 몸무게는 148㎏. 스모에서 은퇴한 뒤 ‘K1’ 무대에 섰다가 동네북이 된 하와이 출신 아케보노(215㎏)나 무사시마루(237㎏)에 비하면 플라이급 수준이다. 그런 아사쇼류가 대기록을 세운 것은 몽골계의 탄탄한 체력과 기술 덕분이다. 순간 돌파력으로 상대를 밀어붙였다가 잡아당기는 기술은 사상 최고로 평가된다. 일본 선수들처럼 몸집을 불린 뒤 상대를 씨름판 밖으로 내몰거나 제압하는 전통 스모 대신 순간적으로 상대를 끌어당겨 무릎을 꿇리는 ‘기술 스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런데 자만심이 발동했는지 아사쇼류는 그만 대형사고를 치고 말았다. 지난달 25일 ‘허리와 무릎 부상’을 이유로 전치 6주의 진단서를 일본스모협회에 제출한 뒤 전국순회경기에 빠지고 “요양하겠다”며 고향 몽골로 훌쩍 떠나버렸다. 금의환향했다는 흥분에서인지 아사쇼류는 요양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어버린 채 어린이 축구자선경기에 출장했다.
이 장면이 일본TV에 보도되면서 ‘꾀병’ 논란이 일었고, 국민들은 그간 ‘건방진 태도’를 보인 아사쇼류에 대한 감정이 폭발했다. “아사쇼류는 일본 스모계에서 나가라”는 팬들의 불만이 잦아들 줄 모르자 7월 말 몽골 정부까지 나서서 일본스모협회에 사과 공문을 보냈지만 파문은 날로 확대되고 있다.
◇고향 몽골로 금의환향한 아사쇼류가 축구자선경기에서 어린이들과 어울려 공뺏기를 하고 있다.

◆아사쇼류의 단점
등극 이후 왕좌를 지키기가 더 어렵다는 요코즈나에 오른 아사쇼류는 4년여 일본 씨름판을 호령해왔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볼 때 몇 가지 단점이 있다. 대부분 스모 선수들은 과묵하다. 최고수인 요코즈나에게는 이겨도 져도 표정 없는 절대 과묵과 겸손이 미덕으로 꼽힌다. 그러나 아사쇼류는 달랐다. 이기면 좋아하고, 지면 억울해 하고 인터뷰 때도 미주알고주알 얘기한다. 때로는 벌렁 드러누워 말하는 등 쇼맨십도 연출한다. 일본 팬들에게 잘 보이려는 태도나 말은 찾아볼 수 없다. 요코즈나라고 해서 거들먹거릴 줄도 모르는 스물여섯 나이의 보통 청년이었다. 그런 거침없는 태도는 품위를 중시하는 스모계나 팬들이 ‘자질론’을 거론하는 계기가 됐다.
또하나, 그는 외국인치고 ‘너무 잘한다’는 것이다. 지금 일본에는 2명의 요코즈나가 있다. 아사쇼류와 함께 몽골 출신 레슬링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아들인 하쿠오다. 일본인 요코즈나 다카노하나가 은퇴한 뒤 5년째 토종 요코즈나는 나오지 않고 있다. 아사쇼류가 이끌어온 지난 4년여간의 씨름판은 그랬다. 될 성싶은 일본인 선수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스모의 인기가 떨어지고 관중이 줄고 있다. 아무리 국적 차별이 사라진 현대 문명사회라고 해도 일본 국민의 자존심과도 같은 전통 스포츠에서 자국인 챔피언을 바라는 것은 한국과 마찬가지다.
아사쇼류가 독주하는 씨름판은 좋은 게 아니라는 인식이 스모계에 퍼져 있다. 그러나 그는 세간의 비판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일부러 반항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각계 평가와 반응
몽골에서는 아사쇼류에게 내린 조치가 이례적으로 중징계라고 비판하고 있다. 몽골 언론들은 “외국인 스모선수에 대한 부당한 차별”이라며 일본스모협회의 처사를 비난하고 있다. 몽골의 일부 신문들은 최다 우승 등 일본 선수가 세운 기록이 깨지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적인 조치라고 의심하기도 한다.
일본과 몽골 간에 외교적 문제로 비화될 조짐도 보인다. 일본에 대한 몽골 국민들의 인식은 이번 일을 계기로 악화되고 있다. 몽골 시민단체 등은 지난 16일 몽골 주재 일본 대사관 앞에서 ‘아사쇼류는 우호의 상징’이라는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중징계 처분을 시정하라고 요구했다
일본에서 활약하는 외국인 선수들 사이에서도 아사쇼류 동정론이 일고 있다. 아사쇼류가 미국 등 비아시아계였다면 그렇게 비판받았겠느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스모계에서는 아사쇼류가 매스컴의 압박에 시달리다가 결국 은퇴할 것이란 전망이 있다. 전문가들은 아사쇼류 비난은 감정을 극도로 자제하고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일본인의 자존심을 건드린 보기 드문 사례라고 풀이한다.
도쿄=정승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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