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두 부부의 전설적인 스캔들 중 하나. 제우스는 어느 날 강의 신 이나코스의 딸 이오의 아름다움에 반한다. 이오에게 사랑을 속삭여보지만 그녀는 제우스로부터 도망치고, 그는 어둠의 장막을 내려 이오를 둘러싼다. 그리고 구름으로 변해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고야 만다.
한편, 한낮의 먹구름을 수상하게 여긴 헤라가 이를 발견하게 되고, 아내에게 발각된 제우스는 이오를 흰 암소로 둔갑시킨다. 이를 간파한 헤라는 크게 분노하고, 놀란 이오는 헤라를 피해 온 세상을 떠돌아다닌다. 이오의 고생을 차마 볼 수 없었던 제우스는 헤라에게 용서를 구한 후 이오를 사람으로 환생시켰다는 얘기다.
초기 르네상스 화가 코레조는 ‘제우스와 이오’라는 에로틱한 명화를 남겼다. 이 그림은 신성로마제국 황제에게 선물로 바쳐졌는데, 황제가 감상할 그림인 만큼 정사 장면은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 매우 로맨틱하게 묘사되었다. 북슬북슬한 구름처럼 보이는 제우스의 손이 이오의 미끈한 허리를 감싸 안고 있으며, 신비롭고도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표출시킨다.
제3자가 보기에도 관능적일진대, 불륜의 장본인인 남성의 아내 입장에서는 정말 머리털이 거꾸로 솟는 장면이 아닐 수 없을 터. 제우스의 수많은 불륜현장을 목격해야 했던 헤라는 호메로스의 말처럼 “제우스조차 두려워한, 질투심 많고 드세고 걸핏하면 싸우는 여신”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헤라의 분노에 의해 희생된 여인은 그리스 신화의 한 줄기를 이룰 정도로 많다. 자의든 아니든 그와의 동침만으로도 고대 그리스의 불륜녀들은 ‘결혼의 신’이기도 한 헤라가 가하는 서슬 퍼런 응징을 감내해야 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헤라가 정작 자신을 속이고 바람을 피운 남편 제우스에게는 결국 관용을 베풀었다는 점이다. 하늘을 관장하는 최고의 권력자지만, 결혼관계의 신의를 저버린 바람둥이일 뿐인데, 어째서 헤라는 제우스에게 처벌의 칼날을 거두었을까. 헤라는 남녀 간의 신뢰를 신성시하는 결혼의 신이었다. 자신도 결혼의 울타리에 귀속
된 처지로 신성한 결혼을 유지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었을 것이다. 비록 남편의 바람기를 완전히 없애진 못했지만, 끊임없는 제우스의 외도를 지켜보면서도 그에 대한
신뢰와 존경심을 잃지 않으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몸부림쳤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헤라는 실수투성이인 남편을 감싸고 인내하는 요즘 보기 드문 조강지처인 셈이다.
◇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 |
결혼한 지 20년차인 필자의 조심스런 견해로 보건대, 결혼을 지속시키는 힘은 금방 식을 육체의 열정이 아니라, 서로 간의 신뢰에서 나오는 인내와 관용이 우선이라는 생각이다. 설령 남편이 알아주지 못하더라도 관용과 믿음이 근본이 되는 가정을 유지하는 것이 바로 헤라가 바라는 진정한 가정의 모습이 아니었나 싶다.
오늘도 가정과 남편을 훌륭히 지켜내는 현대의 헤라인 우리네 아내들에게 무한한 감사와 존경과 애정을 표하는 바이다.
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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