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렬하게 드라마틱하면서 무척이나 진부한 이 문학적 주제를 독특하게 풀어낸 두 편의 한국영화가 여름 절정기에 관객을 찾는다. 장르도 시대 배경도 다르지만, 사랑과 죽음을 씨실로 삼고 공포와 판타지를 날실로 삼아 잘 버무려낸 연출력이 돋보인다. ‘기담’은 1940년대 서양식 병원을 배경으로 한 이색 공포물이고 ‘별빛 속으로’는 1970년대 말 한 청년이 겪는 색다른 판타지물이다.
두 영화가 매혹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기묘하고 신비로운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에 걸맞은 환상적 이미지를 잘 덧입혔기 때문이다. 두 작품 모두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한여름 밤의 꿈과 같은 영화다. 그렇고 그런 공포물에 질린 관객들에게 특이한 경험을 안겨 줄 만하다.
◆지독한 사랑이 낳은 공포=사랑을 잃은 슬픔은 때로는 죽음의 욕망을 낳고, 때로는 공포를 낳는다. 지독하게 사랑했기에, 도저히 떨쳐낼 수 없기에 사랑은 비극으로 승화된다.
‘기담’은 1942년 경성, 신식 의료원 ‘안생병원’을 배경으로 한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신식 문물이 공존하던 시절, 사랑과 연모 때문에 섬뜩한 공포가 빚어진다. 같은 공간에서 나흘간 벌어진 각기 다른 세 가지 이야기는 퍼즐처럼 겹쳐지기도 한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비관해 자살한 한 여고생의 시체가 병원에 들어온다. 의학실습생 정남(진구)은 이 아름다운 시체에 홀려 매일 그를 찾는다. 또 다른 날엔 소녀 아사코(고주연)가 일가족이 몰살한 교통사고에서 홀로 살아남아 병원에 실려온다. 아사코는 새 아빠와 엄마가 끔찍한 환영으로 등장하는 악몽에 시달린다. 서로 끔찍이 사랑하는 의사 부부 동원(김태우)과 인영(김보경)도 안생병원의 일원이다. 어느 날 동원은 아내에게 그림자가 없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고, 나아가 그가 밤마다 어딘가로 사라지는 것을 목격한다.
‘기담’은 공포영화이지만 무서움보다는 오히려 연민과 슬픔을 자아낸다. 배경이 되는 안생병원 역시 기존 공포영화의 공간처럼 어둡고 음산한 병원과는 거리가 멀다. 핏기없는 하얀색 병원 대신 목조건물을 통해 따스한 느낌의 옐로와 브라운 이미지를 더 활용했다. 벚꽃, 수련, 낙엽, 설산으로 형상화된 영혼결혼식의 환상 시퀀스는 영화가 추구하는 탐미적인 서정 공포를 잘 보여준다. 1일 개봉.
◆죽음을 통해 이룬 사랑=‘별빛 속으로’는 사랑과 죽음이라는 소재를 판타지로 접근했다. 2007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순진한 대학생 수영(정경호)은 명랑하고 자유분방한 성격의 삐삐소녀(김민선)를 만난다. 어느 날 삐삐소녀는 갑작스럽게 투신자살하고, 이후 수영 앞에 이상하고 신비로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죽은 삐삐소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실제처럼 나타나고, 새로 과외를 하게 된 여고생 수지(차수연)와는 기묘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환상인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수영은 자신과 수지에 얽힌 놀라운 비밀을 알게 된다.
영화는 꿈과 현실, 현재와 과거, 환상과 실재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몽환적인 분위기가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가운데 판타지와 멜로, 게다가 호러까지 가미돼 다양한 장르의 색다른 조합을 맛볼 수 있다. ‘식스 센스’와 같은 작은 반전의 묘미도 있지만, 이 영화가 내세우는 것은 반전이 아니라 운명과 같은 사랑을 이루게 되는 남녀들의 이야기이다. 이승에서 사랑을 이루지 못한 삐삐소녀는 수영에게 짜릿한 환상의 경험을 선사하고 또 다른 인연으로 이끈다.
‘진정한 사랑은 죽음까지 따라갈 수 있다’고 하지만, 영화는 비장한 신파가 아니라 삶과 죽음이 행복하게 공존하는 러브 스토리를 전한다. 황규덕 감독은 “이승과 저승을 넘는 사랑 이야기 ‘천녀유혼’과 뻔뻔스럽게 진짜와 거짓말을 애매하게 늘어놓는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를 참고했다”고 설명했다. 9일 개봉.
김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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