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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 국제팀장 |
미국의 ‘충성 맹세’(The Pledge of Allegiance)이다. 우리나라의 ‘국기에 대한 맹세’와 유사하다. 수년 전 미국에서 공립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이 자연스레 외우는 것을 듣고 놀랐던 기억이 남아 있다. 자유의 나라라고 자부하는 미국에서 이런 것을 외우게 하고, 학부모나 학생이나 아무렇지 않게 이를 받아들이는 게 의아스러울 정도였다.
미국 공립학교에서는 매일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이 충성 맹세를 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가장 먼저 외우는 게 이 충성 맹세가 아닌가 싶다. 학부모회의 등 주요 교내 행사에서 국가 제창은 생략해도 충성 맹세는 반드시 한다.
미국의 충성 맹세는 1892년 침례교 목사 프랜시스 벨러미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는 국가적 단결을 과시하기 위해 이런 맹세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그해 벤저민 해리슨 대통령의 포고령으로 콜럼버스데이에 공립학교에서 처음 사용됐고, 1945년 미 의회가 공식적인 국가 맹세로 승인했다. ‘하나님의 보호 아래’라는 구절은 1954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 의회 결의를 거쳐 삽입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는 27일 새로운 ‘국기에 대한 맹세’가 도입된다. 새 맹세문은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이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매주 월요일 ‘애국 조회’ 때마다 국기에 대한 맹세를 했다. 기존 맹세문인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였다. 이제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맹세하되 ‘몸과 마음’까지 바치겠다고 공개적으로 각오할 필요는 없어졌다.
국기에 대한 맹세를 둘러싸고 말이 많았다. 굳이 바꿔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론도 제기됐고 일각에선 존폐 논란까지 일었다. 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게 폐지론의 핵심이다. 권위주의 체제에서 국가 동원의 수단이었다는 인상이 남아 있기 때문인 듯하다.
미국에서도 충성 맹세는 수차례 수정됐다. 지금도 충성 맹세 가운데 ‘하나님의 보호 아래’라는 표현이 종교 자유를 침해하는 게 아니냐는 논란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한 학부모는 학교 당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한동안 헌법상의 정교분리 원칙 위반 논쟁을 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미국에서는 충성 맹세를 폐지하자는 말을 드러내놓고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국기에 대한 맹세를 둘러싼 논란을 지켜보면서 국기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돌이켜보게 된다. 제헌절인 17일 주택가마다 태극기를 게양한 집을 손으로 꼽을 정도로 국기가 홀대받는 실정이다. 어쩌면 우리는 대형 스포츠 경기가 열릴 때만 태극기를 찾는 건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다. 평소에 국기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못하는 마당에 국기에 대한 맹세라도 제대로 하는 게 낫지 않을까.
59년 전인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헌법이 공포된 날을 기념하면서 이제 환갑이 다 돼 가는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여겨도 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냉전시대를 개막한 세계적 전쟁인 한국전쟁을 겪고 가난의 질곡을 극복하면서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고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를 내다보는 나라가 되기까지 고단한 시절을 꿋꿋하게 버텨온 대한민국과 그 상징인 태극기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된다.
박완규 국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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