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은 올해 1월 급성간암 판정을 받고 통원·입원 치료를 반복하다 2일 오전7시쯤 운명했다. 대구 영신고등학교 재학 시절 음악 활동을 시작한 고인은 1988년 록그룹 ‘신화창조’의 보컬로 데뷔해 91년 고 김현식이 몸담았던 그룹 신촌블루스에서 활동했으며, 첫 앨범 ‘보이지 않는 꿈’을 비롯해 모두 6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92년에는 고 김현식을 추모하는 영화 ‘비처럼 음악처럼’의 주연을 맡았고, 99년에는 영화 ‘노랑머리’에도 출연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재준씨와 딸 채린양이 있다. 빈소는 대구 영남대의료원 영안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4일 오전 8시. (053)620-4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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