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들 영화엔 일정한 공식이 있다. 문제는 이러한 장르의 법칙이 너무 낡고 진부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뻔히 보이는 플롯은 관객을 실망시키고 드라마의 극적 장치는 클리셰로 전락해버렸다.
우선 등장인물의 신분은 대부분 과학자나 엔지니어라는 것. 주연이 아니더라도 문제 해결과정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 중에 이 분야 출신이 꼭 있다. 전지구적 재앙에 맞서 자연 재해의 징후를 포착하거나 전문적인 위기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 화산폭발을 다룬‘단테스피크’나 ‘볼케이노’의 주인공은 지질학자, ‘투모로우’에는 기상학자가 나온다. 31일 개봉하는 일본판 재난 블록버스터 ‘일본침몰’의 남자 주인공 오노데라도 잠수정 파일럿이다. ‘포세이돈 어드벤처’나 ‘타이타닉’의 주인공 정도가 평범한 승객이었을뿐 재난영화는 거의 이 공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특히 과학자의 경우 대부분 괴짜아니면 재야학자, 혹은 주류학계에서 왕따당한 전력이 있다.
다음으로 주인공의 경고는 정부 관료나 관계자, 주변 사람의 웃음거리가 된다. ‘투모로우’의 잭 홀 박사는 국제회의에서 기온 하락에 관한 연구발표를 하지만 비웃음만 듣는다. ‘일본침몰’에서 지구과학자 유스케는 1년 안에 일본이 가라앉는다고 주장하지만 관료들은 묵살해버린다. ‘고질라’에서도 군수뇌부는 과학자의 경고를 무시하다 큰코 다친다.
이러한 설정은 인간의 어리석음을 드러내고 클라이맥스의 극적 상황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 동시에 ‘자연재해도 결국 인재’라는 점을 보여주는 역할도 한다. 예를 들어 ‘타워링’에선 설계와는 다른 규격미달 전기배선을 써 화재가 나고, 미관을 위해 구명보트를 확보하지 않은 ‘타이타닉’은 인명피해를 키운다.
무엇보다도 재난 영화에선 마지막에 한 사람의 결정적 희생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아마겟돈’에서 브루스 윌리스는 자기 목숨을 내놓으며 혜성을 폭파하고 ‘딥임팩트’의 메시아호는 지구를 구하려고 혜성에 부딪혀 자폭한다. ‘버티컬 리미트’의 베테랑 등반가 몽고메리는 스스로 줄을 잘라 주인공을 구한다.
하지만 예수님같은 수퍼히어로 한 명이 위기를 해결한다는 설정은 너무 단순하다. 결국 영화는 신파로 흐르고 과도한 감정과잉은 작품성을 떨어뜨린다. 그래서 재난영화 계보를 보더라도 ‘블록버스터’는 많지만 제대로된 ‘작품’은 없다. 영화평론가 유지나씨는 “원래 재난영화는 할리우드에서 탄생했다”며 “단순한 기승전결의 강박에 사로잡힌 할리우드 영화의 태생적 한계”라고 지적한다.
마지막 법칙. 사태가 어느정도 해결된 다음엔 항상 대통령이나 장관이 대국민성명 발표한다는 점. 외계비행체를 폭파한 ‘인디펜던스 데이’의 미국 대통령은 TV연설을 통해 전지구적 단결을 강조한다. ‘딥임팩트’의 흑인 대통령 모건 프리먼도 재건의 희망을 이야기한다.
게다가 이때 전세계인들이 연설에 귀 기울이는 장면이 반드시 삽입된다. 아프리카 아이들이나 중동의 유목민, 아시아 민중 등 세계 각지에서 환호하는 인파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세계일보 인터넷뉴스부 이성대 기자 karis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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