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혈육 이복형의 손자들 결혼 안해 ‘아돌프 히틀러’는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인물 중 하나다. 유대인 대학살을 저질렀던 히틀러는 1945년 4월 30일 자살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히틀러’란 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숨죽여 살아가는 세 형제가 있다. 최근 러시아를 중심으로 나치즘이 다시 고개를 드는 가운데 뉴욕타임스는 이들과 접촉했다.
미국 롱아일랜드주 뉴욕 패초그 지역에 살고 있는 이들의 이름은 알렉스(57), 루이스(55), 브라이언(41). 원래 4형제였지만 셋째 하워드는 1989년 교통사고로 숨졌다. 알렉스, 루이스, 브라이언은 히틀러 아버지를 같은 뿌리로 하는 마지막 사람들이다. 형제는 ‘히틀러의 핏줄이 더 이상 세상에 나오지 말아야 한다’며 결혼하지 않기로 합의해 자식이 없다.
현재 알렉스는 사회복지사로, 브라이언과 루이스는 정원사로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뉴욕타임스 기자가 찾아갔을 때 루이스는 “지금은 가족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며 “우리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있다. 언젠가 우리 스스로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 맨해튼에서 공연되는 그들의 아버지 윌리엄 패트릭 히틀러(이하 히틀러와 구분하기 위해 윌리엄으로 표기)의 인생을 다룬 ‘작은 윌리’란 연극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우리 삶에 관심을 갖는 데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이들은 히틀러의 이복형인 알로이스 히틀러 주니어의 손자다. 히틀러는 평생 독신으로 살다 자살하기 전날 결혼해 자녀가 없다. 알로이스 히틀러 주니어는 결혼해 영국 리버풀에서 윌리엄을 낳았다. 윌리엄은 독일 수상이 된 히틀러를 찾아가 일자리를 부탁했지만 히틀러는 은행원, 자동차판매원 등 기대에 못 미치는 일자리밖에 제공해 주지 않았다. 결국 그는 나치즘에 신물을 느끼고 영국으로 건너가 ‘반히틀러’ 운동에 앞장섰다.
1944년 윌리엄은 미국으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필리스란 여성과 결혼했다. 윌리엄은 자신이 히틀러가(家)란 사실을 철저히 숨겼다. 윌리엄은 히틀러와 생김새가 많이 닮았음에도 마을 주민은 윌리엄이 단지 바깥 출입이 거의 없는 침울한 독일인으로 생각했다. 윌리엄은 1987년 사망했다. 이웃이던 마릴린 바나샤크(75)는 “2002년 히틀러의 친척에 대한 기사를 통해 윌리엄의 비밀을 알게 된 뒤 경악했다”고 말했다.
윌리엄이 자신을 숨긴 탓에 아이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마을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 어릴 적 친구였던 테레사 라이더는 “그들은 다른 미국 아이들과 같았다”면서 “그러나 그들은 집에서 독일어를 사용했고 뒷마당에서 갖고 놀던 배 이름도 비스마르크였다”고 기억했다.
이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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