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을 부유하는 우리는 한낱 먼지같은 존재 김훈(58)의 소설은 대체로 무인(武人)의 자존과, 시간의 풍화와, 강건한 허무가 깃든 견결한 문체를 뼈대로 이루어가는 집이다. 그의 소설에서 남성들은 절대 울지 않는다. 여인을 가끔 애틋하게 바라보기는 하되 티를 내지 않으며, 그네들에게 애써 다가가지 않으니 상처를 줄 여지도 없다. 현실은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기술하되 구차하게 이용하지 않는다. 그는 소설 속에서 공들여 보여주는 현실 쪽에 시선을 두지 않고 태곳적부터 불어오는 풍화된 시간의 바람 속에 놓아둔다. 그리하여 그의 주인공들은 지금 이곳을 부유하는, 황해를 건너온 먼지 같은 존재들이다.
한국일보, 국민일보, 한겨레신문, 시사저널 들을 거치며 화려한 저널리스트로 살았던 그가 1995년 장편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을 펴내며 소설가로 나선 지 10년 만에 첫 소설집 ‘강산무진’(문학동네)을 펴냈다. 물론 그동안 장편 ‘칼의 노래’로 2001년 동인문학상을, 2004년에는 처음으로 선보인 단편 ‘화장’으로 이상문학상을, 이듬해에는 단편 ‘언니의 폐경’으로 황순원문학상도 수상했다. 독자와 평단으로부터 고루 평가를 받았으니 그는 분명 ‘행복한’ 작가임에 틀림없으나, 이런저런 인터뷰에서 자신은 소설가가 아니라 ‘자전거 레이서’일 뿐이라고 굳이 물러선다. 이 또한 한국적 문학 현실을 살아가기는 하되, 그 현실에 진압당하고 싶지 않은 ‘무인’의 자존일까. 어쨌든 그의 첫 소설집은 김훈문학의 결과 층을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드러내는 집적물일 수밖에 없다.
“오지의 여인숙에서 윤애는 무덤덤하게 김장수의 몸을 받았다. (중략) 김장수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사랑이라고도, 불륜이나 치정이라고도, 심지어 욕망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뭐랄까, 물이 흐르듯이, 날이 저물면 어두워지듯이, 해가 뜨면 밝아지듯이, 그렇게 되어져가는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18∼19쪽, ‘배웅’)
“그 여관방에서 당신의 몸을 생각하는 일은 불우했습니다. 당신의 몸속에서, 강이 흐르고 노을이 지고 바람이 불어서 안개가 걷히고 새벽이 밝아오고 새떼들이 내려와 앉는 환영이 밤새 내 마음속에 어른거렸습니다.”(62쪽, ‘화장’)
“속세 생각 나네요. 속세 생각……이라고 말할 때, 여승의 ‘ㅅ’ 발음 세 개는 날카롭고 가벼워서 바람이 마른풀을 스치는 소리처럼 들렸다. 여승이 ㅅㅅㅅ을 발음할 때 여승의 입에서 흰 입김이 토해져 나왔다. 입김이 ‘ㅅ’ 발음들 사이에서 흩어졌다.”(156쪽, ‘뼈’)
위에 인용한 세 편의 단편 속에서 주인공들은 유전자에 기록된 감각 혹은 관능의 기억을 따라가기는 하되, 한 발짝 물러서서 그 오래된 유전자의 지시를 여승의 ‘ㅅ’ 발음 속에 구태여 날려버린다. 그렇게 날려버린 자리에 들어선 김훈의 현실은 냉혹하지만 아름답다.
“배는 단애 모퉁이를 돌아서 사라졌다. 바람은 동남에서 불어왔다. 맑고 가벼운 바람이었다. 버리고 간 기저귀가 빨랫줄에 걸려 있었다. 배가 사라진 쪽으로 기저귀는 길게 나부꼈다.”(126쪽, ‘항로표지’)
“골반뼈로 남은 AD 6세기 여자의 이름은 기원화가 되었다. 진부한 이름이었다.”(163쪽, ‘뼈’)
“가을의 끝으로 스러져가는 왕버들은 그 잎 속에 감추어져 있던 모든 시간의 색깔을 밖으로 뿜어내다가 그 색이 다하는 순간에 물 위로 나뭇잎을 떨구었다.”(283쪽, ‘머나먼 속세’)
“수면제를 먹고 잠든 날 아침은 잠에서 깨어나도 의식은 멀리서 뭉그적거렸다. 마음이 너무 희미해서 불러들일 수가 없었다. 마음은 먼 호롱불 같기도 했고 짙은 안개 같기도 했다.”(324쪽, ‘강산무진’)
이처럼 김훈이 소설 속에 용해시킨 그의 ‘현실’을 찬찬히 뜯어보면, 그가 몇 년 전 ‘늙어서’ 자청했던 일간지 사회부 기자는 리얼리티를 시로 승화시키기 위한 욕망의 자리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그가 묘사한 현실에는 기름기가 빠져 있어 담박하고 아름답다. 이 아름답다는‘천박한’ 형용사가 무사 김훈을 자극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가 반박하며 들고 나와 휘두를 장검의 날도 석양에 반사돼 다시 황홀할 것이다.
조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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