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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벌레로 10개월… 그 묵묵함에 반했어요"

입력 : 2006-03-31 18:58:00 수정 : 2006-03-31 18: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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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사람] 곤충애호가 용동욱씨 애벌레 한 마리가 번데기를 거쳐 날개를 얻었다. 환골탈태한 왕사슴벌레의 위엄 있는 턱이 경이롭다.
필생의 숙원을 이룬 왕사(왕사슴벌레)는 성취감 깃든 여유로움 속에서 젖은 날개를 말린다. 10개월간의 애벌레 생활을 묵묵히 견뎠기에 누릴 수 있는 삶의 절정이다.
곤충 애호가 용동욱(30)씨에게는 이 순간이 가장 보람 있다.
그가 키우는 왕사와 넓사(넓적사슴벌레)는 개와 고양이 같은 포유류에서 느낄 수 없는 환희를 준다.
“턱이 사슴뿔처럼 쭉 뻗고 튼튼한 놈이 나오면 자식을 최고 명문대학에 진학시킨 부모 마음처럼 뿌듯해요. 기나긴 애벌레 단계를 잘 참아내 대견한 맘마저 듭니다.”


그가 곤충을 ‘인생의 동반자’로 돌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5월부터다. 전라남도 해남 출신인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장수풍뎅이, 잠자리, 하늘소 등과 친숙했다. TV에서 방영하는 곤충 관련 다큐멘터리를 놓치지 않고 봤다. 검은 갑옷을 입고 위압적인 턱을 세우는 놈은 확실히 건담이나 마징가 따위보다 멋있었다. 진작 곤충을 키우고 싶었지만 시간적·금전적 여유가 없어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직장을 잡고 제법 생활이 안정된 지난해부터 비로소 사육통이나 산란목, 와인 냉장고 등 사육장비 일습을 마련할 수 있었다.
정유회사 안전요원으로 근무하는 그는 일터에서 24시간을 보내고 오후 4시에 퇴근한다. 새벽 4∼5시쯤 잠자리에 들 때까지 곤충 보살피는 일에 매달린다. 성충의 보금자리인 톱밥더미를 갈아줘야 하고, 애벌레의 먹이가 되는 균사(버섯균)를 배양해야 한다. 생수로 채운 분무기로 목욕을 시켜주는 것도 필요하다. 손이 많이 가지만 그는 결코 번거롭다고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이 녀석들만 기르고 싶은 마음에 출근하기가 싫어질 때가 있어요. 아직 곤충 사육 지식이 완전하지 않아서 녀석들의 발육에 뭐가 좋을까를 연구하느라 바쁘거든요.”
우람하고 잘 빠진 놈을 키워내는 것은 곤충 사육의 또 다른 매력이다. 왕사는 보통 수컷이 75㎜ 안팎인데, 여기서 1㎜라도 더 키우면 외모가 확연히 달라진다. 여느 생물과 마찬가지로 우량아가 되기 위해선 부모의 정성과 사랑이 필요하다. 생활 터전을 일반 톱밥이 아닌 영양 많은 균사로 만드는 것은 기본이고 애벌레 시절 스트레스를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적정한 습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분무기로 사육통 안을 축여주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온도 역시 중요한 조건이다. 그는 와인 냉장고를 구입해 애벌레들에게 섭씨 15도의 서늘한 요람을 만들어줬다. 성충이 된 놈에겐 ‘아미노산 젤리’를 따로 구입해 먹인다. 자연식으로 바나나 조각을 간간이 던져주기도 한다. 그는 현재 9마리의 왕사 성충과 80여마리의 애벌레를 키우고 있다. 이들에게 쏟는 비용은 한 달에 약 30만원이다.
“먹이로 쓰는 젤리는 수입품이라 좀 비싸요. 산란목도 자연산 나무로 구입하면 비용이 더 듭니다. 하지만 녀석들에게 최고의 대접을 해주고 싶어요.”
곤충을 키울 때 가장 위협적인 적은 조급증이다. 마음이 급한 사람은 결코 애벌레를 온전한 성충으로 키워낼 수 없다. 애벌레가 사육통 깊숙이 숨는 경우가 많은데, 궁금하다고 파헤쳐 보면 치명적이다. 죽거나, 우화(날개돋이) 부전·용화(번데기 되기) 부전 등으로 기형에 시달리기 십상이다.
“처음엔 이놈들이 잘 자라고 있나 궁금해 미치겠더라고요. 그래서 뚜껑을 열고 파헤쳤어요. 사육통 깊숙한 곳에서 꼼지락거리는데, 예상치 못한 빛과 기온 차 때문에 경련을 일으키는 것 같았어요. 결국 성충이 되는 과정에서 날개가 찌그러지는 우화 부전이 일어났지요. 가슴 미어지는 일이죠.”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주되 성마른 간섭을 삼가는 게 좋다.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처럼 못 미더운 마음에 뒤를 돌아보다간 모든 것을 망친다. 정 궁금하면 애벌레 사육통을 살짝 뒤집어서 손끝으로 가볍게 친다. 그러면 애벌레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그가 시행착오 끝에 알아낸 노하우다.
또 다른 위협요소는 포유류와 곤충류의 생래적인 차이다. 예컨대, 모기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에도 결코 ‘에프 킬라’를 뿌려선 안 된다. 모기향도 금물이다. 그는 모기에 뜯기는 편을 택한다. 담배도 집 안에서 피우지 않는다. 산속 맑은 공기를 제공하지 못할망정 일산화탄소 가득 찬 공기로 숨쉬게 할 순 없기 때문이다. “집안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다 보니 자연스럽게 흡연량이 줄었어요. 녀석들 덕분에 금연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조성됐죠.”
근친교배도 곤충을 불행하게 하는 요소다. 근친교배 2세대까지 괜찮아 보여도 3세대부터는 열성 형질을 물려받아 몸집도 작고 수명이 급속이 줄어든다. 이런 점에 유의해 짝짓기를 시켜야 한다.
아직까지 집 안에서 애완 곤충을 키우는 인구는 많지 않다. 그는 언제라도 직장 동료나 친구에게 한두 마리 건네줄 준비가 돼 있으나 모두 “줘도 싫다”는 반응이었다. 그는 주로 아이들에게 곤충을 분양해준다. 사슴벌레를 키우고 싶어하는 아이들은 많지만 가격 때문에 섣불리 구입하지 못한다. 70㎜ 정도의 왕사슴벌레 성충 수컷은 시가 10만원이 넘는다. 그는 얼마 전에 합사한 성충으로부터 사슴벌레, 풍뎅이의 애벌레 80마리 정도를 얻어 자원이 풍부한 편이다.
“비용 때문에 엄두를 못 내는 아이들에게 애벌레를 줍니다. 곤충 키우기는 인간 위주의 좁은 세계관을 넓혀 주죠.”
언젠가 곤충 농장을 운영해보고 싶은 꿈이 있다. 곤충을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훤칠하고 잘 빠진 사슴벌레를 키워내 곤충 기네스북에 올리고 싶은 욕심도 있다.
예비 곤충농장 주인인 그는 곤충 키우기 저변을 넓히기 위해 작은 일부터 시작한다. 우선 자신의 집을 방문한 사람에게 곤충 키우기를 권유하며 애벌레를 준다.
“곤충 키워 보신 적 없죠? 키우다 보면 자신의 성격이 조급한지 아닌지를 알 수 있지요.”
그의 집에서 대화를 나눴던 이날 역시, 그는 엄지손가락만한 애벌레 한 마리를 건네면서 “튼실한 놈으로 키워 달라”고 당부했다.

심재천 기자 jaysh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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