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에서 이젠 어엿한 ‘거장’ 반열의 연주가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장영주·사진). 어떻게 다 소화할까 싶은 바쁜 일정에도 그는 늘 ‘즐겁게 연주하기 때문에’ 피로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한다. 독일 뮌헨의 한 호텔에 머물고 있는 사라 장과 20일 전화로 만났다. 수화기 너머 들리는 목소리에서 특유의 천성적인 유쾌함과 발랄함이 묻어났다.
“컨디션이요? 아주 좋아요. 많이들 피곤하지 않느냐고 물으시는데 전 재밌어요. 다니는 것을 워낙 좋아하고, 각국의 도시마다 너무 예쁘고 볼 것도 많잖아요. 나라별로 친구들을 만나는 일도 즐겁고요.”
그는 매주 다른 도시에서 살고 있다. 최근 일정만 보더라도 독일에서 일주일을 보낸 후 덴마크로 떠나 다시 일주일을 보내고 그 다음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머무는 식이다. 이제는 이런 생활이 익숙해져 시차 적응하는 노하우도 나름대로 터득했다. 틈틈이 자는 것이 버릇이 되어 이제는 머리만 닿으면 잠이 드는데 매니저가 ‘어떻게 볼 때마다 잠만 자느냐’고 신기해 할 정도. 하지만 연주회가 열리는 저녁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생기가 돈다.
어느 예술가가 ‘사라는 아주 똑똑하고 자기주장이 강하기 때문에 무리 없이 사춘기를 넘어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성장할 것’이라고 장담한 것처럼 그는 ''천재''라 불리는 예술가들의 고비인 사춘기를 무리 없이 넘어 거장의 반열에 오르며 가장 바쁜 바이올리니스트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이달 초 발표한 ‘쇼스타코비치 탄생 100주년’ 기념 앨범에서는 세계 최강의 오케스트라인 베를린 필하모닉과 호흡을 맞췄다. 한국계 연주자로서는 최초로 베를린 필의 실제 주인인 사이먼 래틀이 지휘봉을 잡아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었고 둘의 만남은 세계적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사이먼 랜틀(왼쪽)과 사라 장 |
“국가마다 팬들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요. 미국이나 한국 같은 경우에는 기립박수를 치는 경우가 흔하죠. 악장 사이 박수를 받는 경우도 흔하고요. 하지만 유럽 같은 경우는 모두 앉아서 박수를 치는데, 아주 오랫동안 박수소리가 끊기지 않아요. 어제 12번의 커튼콜이 있던 것처럼…”
각국의 나라마다 팬들의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는 것도 그녀가 말하는 ‘재미’중의 하나다. 각국 팬들의 스타일도 다양하다. 한국의 어느 팬은 직접 접은 종이학 1000마리를 보내기도 하고, 유럽의 어느 팬은 직접 짠 스웨터를 선물했다. ‘얼마나 정성과 시간이 필요한 일인지 알고 있다’는 그는 팬들의 정성이 담긴 선물이야 말로 ‘최고’라고 표현한다.
최근 그는 음악 관계자를 만나거나 인터뷰를 할 때면 공식 명칭을 ‘사라 장’으로 해줄 것을 당부한다.
“세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했고 여덟 살 때 미국에서 데뷔무대를 가지면서 음악 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때 ‘사라 장’으로 데뷔를 해서 알려지기 시작했죠. 그런데 어느 날 한국을 찾았을 때 어느 기자분이 ‘미국에 사라 장이라는 천재 바이올리니스트가 화제가 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묻는 거예요. 혹시 라이벌 의식을 느끼지 않느냐고.”
지금은 장영주와 사라장이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지만 국제적으로 쓰이는 이름인 ‘사라 장’으로 통일하는 것이 좋겠다고 뜻을 밝혔다.
올해 25세를 맞은 그는 결혼 얘기가 나올 법 한데 2009년까지 스케줄이 꽉 차 있어 연애할 엄두도 못 내고 있단다. 이상형을 묻자 “음악하는 사람이라면 내 생활을 일일이 설명 안 해도 되니까 편하고 좋을 것 같다”며 “하지만 둘의 공통점이 음악뿐이라면 그것도 지루하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쇼스타코비치 앨범을 레슨의 힘없이 처음으로 독학했던 사라 장은 오는 9월 비발디의 ‘사계’를 녹음하며 더 큰 도전을 시도할 계획이다. 지휘자 없이 연주를 하며 직접 베를린 필을 이끌기로 한 것. 가장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곡이자 이미 무수히 많은 명반이 나온 ‘사계’를 어떻게 해석할 예정일까.
“음악 감독을 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이번 레코딩을 통해 많이 배울 것 같습니다. 사계는 많은 연주자들이 좋아하는 레퍼토리인데 보통 현대적으로(contemporary) 해석되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비발디가 쓴 대로 원곡에 충실하며 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해석을 전해드릴 예정입니다. 기대해주셔도 좋아요.”
세계닷컴 두정아 기자 (violin8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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