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위인 중에서도 링컨 대통령이 싫었다. 통나무집에서 태어나 미국 대통령이 됐다는 ‘개천 용’인 그의 성공담을 들으면 비위가 뒤틀렸다. 멀쩡한 부모 밑에서 자라 명문대학을 졸업하고도 대통령은커녕 장관도 되지 못한 사람에게 ‘왜 사니’ 하고 비웃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런 고매한 분이 고종명(考終命)의 오복을 누리지 못하고 노상객사와 비명횡사의 횡액을 당한 점이 마음 아프다. 따지고 보면 고인의 전매특허인 노예제도와 관련, 1861년의 남북전쟁 발발 40여년 전인 1818년에 미국 전체 주 중 11개 주가 노예제도를 금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느 줄에 넣어야 할까.
세밑에 왜 미국 대통령 이야기를 꺼내느냐고 흉보지 않았으면 한다. 태조 이성계에게 무학대사가 국사였듯, 노무현 대통령의 무학대사가 바로 링컨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노무현이 만난 링컨’이라는 저서의 저자인 데다 위기나 기회 있을 때마다 거론하는 등 링컨 대통령을 사부로 모시고 있는 인상을 준다. 얼마 전에는 미국 대통령에게 링컨학을 강의할 정도로 그 성취가 대단하다.
사실 우리가 자녀에게 위인전을 읽히는 속내에는 그런 사람이 됐으면 하는 못난 부모의 허영도 혹간 있겠지만, 대부분 위기나 역경, 좌절, 실패를 어떻게 극복했는가를 보여 주면서 삶의 용기와 희망을 잃지 말라는 격려와 자극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 위인이 살아간 길을 답습하라는 추종의 명령은 아니며 현실적으로도 가능하지 않다. 설령 꿈꾼들 이제 뒤늦게 어머니 뱃속으로 돌아가 말 구유에서 태어날 수도, 벚나무나 사과나무가 있는 집에서 태어날 수도, 유목민 추장의 아들로 태어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후대에 발복하겠다고 아파트 팔아 산간벽촌의 통나무집으로 이사해 아들 낳아 대학교 안 보내고 하면 링컨 대통령이 될까. 가능할 법도 한데, 없는 노예제도를 새로 만들 수 없는 게 고민이다. 북한 인권이 그때까지 개선 안 된다면 하나의 대안은 될 성싶다.
“역사는 반복한다”는 중학교 영어시간에 재귀대명사 공부하면서 배운 서양 격언 믿고 동일한 궤도를 달리라는 말은 아니다. 놀부가 심지가 나쁜 탓도 있지만 제비 다리 고쳐준 흥부의 길을 따르려다가 패가망신한 사례를 배워야 할 것이다. 위인전은 교과서가 아니라 하나의 참고자료에 불과하다.
링컨 역시 한 세기 하고도 50년 전의, 그것도 미국 사람이다. 시대와 환경이 다르면 물정이 달라지고 법과 제도, 관행, 풍속이 변하는 게 세상의 이치인데, 그가 아직도 한국 땅에서 국사 노릇한다는 것은 서글픈 초상화다. 오늘날 공맹의 법도를 그대로 재현하면 정신병자 취급받을 텐데 미제라서 품질이 좋은 것인지 링컨의 생명은 질기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정석은 익히되 잊어라”라는 바둑 격언이 존재한다. 전후 좌우 상하 6방의 환경 변화를 무시하고 법규에 구속되거나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정신을 가지라는 의미다.
2차대전 직후에 치른 과거사 청산을 60년이나 지나 흉내내면서 프랑스 대혁명 찬가를 부르고, 북한 인권 문제 논의에 링컨의 노예해방까지 끌어다 붙이니 앞으로 위인전을 금서 목록에 올려야 할까 보다. 왜 남들이 간 길, 그것도 앞에는 천길 낭떠러지가 있다는 데, 그 길로 국민을 끌고 가려고 고집을 부리는지 알다가 모를 노릇이다.
변화가 세상의 순리인데 새해에는 링컨 아닌 새로운 고명한 국사가 나왔으면 한다. 하기야 같은 귀곡자를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했어도 손빈(孫月賓)과 방연(龐涓)이 나온 걸 보면 링컨 잘못만은 아닌 지도 모르겠다.
조병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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