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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꽃에게 길을 묻다]⑬묘향산 보현사 도라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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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08-19 14:34:00 수정 : 2005-08-19 14: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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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떠돌다 잠시 지상에
내려앉은 별님 같은 꽃아!
파리한 낯빛의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그 여인 옆에서 나이 어린 딸이 엄마의 빛바랜 치맛귀를 붙잡고 수줍은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여인 곁을 떠날 때 아이는 울기 시작했다. 아낙은 아이를 때리며 같이 울었다.
그 여인을 닮은 여승을 보았다.
아이는 심심산골 무덤가에 핀 도라지꽃이 좋아 아예 그 무덤으로 들어갔고, 지아비는 벌처럼 날아간 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여인은 치렁한 검은 머리를 잘라 절집 마당가에 버리면서 눈물도 함께 떨구었다.
산꿩이 울던 날 여인은 가을 밤같이 차게 울었고, 옛날 같이 늙었으며, 불경처럼 서러웠다.

“女僧은 合掌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佛經처럼 서러워졌다// 平安道의 어늬 山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女人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女人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 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 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十年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山꿩도 설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山절의 마당귀에 女人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백석, ‘女僧’ 전문)

애초에 묘향산에 가서 그 여인을 만나리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인 백석의 고향이 평안북도 정주이니, 그의 고향과 가까운 평북 향산군 묘향산에서 시인의 체취를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으려니 기대했던 것은 사실이다.
묘향산 보현사는 서산대사가 의병을 일으켰던 천년 고찰이다. 고려시대에 생겨난 이 절집은 입구에서 대웅전까지 남북으로 하나의 축을 이루어 문이 줄줄이 지어진 구조로도 소문나 있다. 조계문 지나 해탈문, 해탈문 지나 천왕문, 천왕문 지나 만세루, 만세루 지나 대웅전, 그 대웅전 오른편 좁은 텃밭에 도라지꽃이 무리 지어 피어 있었다. 천년 고찰의 퇴락한 빛깔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보려야 보이지 않는 깔끔하게 정돈된 북한의 절에서 여승의 눈물 자국은 볼 수 없었고, 대신 대웅전 옆 남새밭에서 여인의 딸이 좋아했다는 도라지꽃을 만날 수 있었다.

도라지꽃밭에서 눈을 들어 절 마당을 바라보면, 8각13층석탑이 104개의 ‘바람방울’을 매달고 정교한 아름다움을 은은하게 과시한다. 13층에 이르는 석탑의 매 층마다 8개의 각을 이룬 돌 지붕이 있고, 그 지붕마다 풍경을 매달아놓았다.
그 풍경을 북에서는 ‘바람방울’이라 부른다고 했다. 독보적인 아름다움과 가치를 자랑하는 그 석탑 꼭대기 너머로 웅장하고 아늑한 묘향산 산세가 흐린 그림자로 흘러간다. 도라지꽃밭을 떠나 대웅전 왼편으로 걷기 시작하면 영산전을 스치고 관음전을 지나 수충사에 이른다. 수충사는 서산, 사명대사와 처영 스님의 영정을 모신 집이다. 그 수충사 앞마당에도 도라지꽃이 피어 있었다. 수충사를 나와 절집 입구 쪽으로 걷다보니 본격적으로 도라지꽃들이 영접한다. 보라색과 흰색이 고루 섞인 별들의 밭이다.

도라지는 꽃도 아름답지만 사람들은 그 뿌리에 대한 집착이 더 강하다. 사포닌 성분이 많은 도라지 뿌리 중 오래된 것은 인삼 못지않은 강력한 강장 에너지가 담겨 있다고 사람들은 믿어왔다. 도라지는 씨만 뿌리면 어디서나 잘 자라는데, 굳이 그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깊은 산중에 들어가면 6월부터 초가을까지 흔하게 볼 수 있는 자생 식물이다. 그래서 산중에 외롭게 누워 있는 무덤과 도라지꽃이 쉽게 시인들의 눈에 잡혔을 것이고, 도라지꽃은 죽음의 이미지와 가깝게 묘사되곤 했다. 그래서 백석도 여인의 딸의 죽음을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고 에둘러 표현했을 것이다. 정한용 시인도 도라지꽃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보았다.

“흰꽃이 피었습니다/ 보라꽃도 덩달아 피었습니다/ 할미가 가꾼 손바닥만한 뒷터에/ 꽃들이 화들짝 화들짝 피었습니다/ 몸은 땅에 묻혀 거름이 되고/ 하얀 옷깃이 바람에 흔들립니다/ 무더기로 손 쓸립니다/ 수년 전 길 떠난 內子를 여름빛으로 만나/ 한참을 혼자 바라보던 할애비도/ 조금씩 보라/ 물이 듭니다”
(정한용, ‘도라지꽃’ 전문)
그렇지만 도라지꽃을 두고 시인들이 어떻게 떠들든 간에, 청정한 보랏빛 도라지꽃에 죽음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건 도라지꽃 입장에서는 가당치 않다. 꽃잎을 가까이서 바라보면 보라색 수맥이 실핏줄처럼 퍼져 있는데, 그 섬세한 모양새가 싱싱한 생명력으로 넘쳐난다. 꽃의 형상이 별을 닮아서 우주를 떠돌다가 잠시 지상에 내려온 별님의 이미지로도 흔하게 비유된다. 꽃을 뒤에서 보면 ‘머리 옥빛 나게 깎고 송낙 깊이 눌러쓴’ 스님처럼 보이기도 한다. 꽃은 보라색이 아니면 순정한 백색이다.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심심산천에 백도라지는, 한두 뿌리만 캐어도 대바구니가 스리살살 다 녹는다.

“도라지 도라지/ 심심산천에 백도라지/ 풋보리밥 한술 된장국 말아먹고/ 지름댕기 팔랑팔랑/ 올해 네 나이 몇 살이더냐/ 도래샘도 띠앗집도 다 버리고/ 눈 오는 날 주재소 앞마당 전남班으로/ 너는 열여섯 정신대 머릿수건을 쓰고/ 고목나무 뒤에 붙어 참매미처럼 희게 울더니// 오끼나와 테니안 라바울 사이펀/ 그 어디쯤 흘러가/ 한 초롱 여름산 더윗술을 걸러주며/ 여적 그 섬 기슭 혼자 폈느냐// 내 어려선 막내고모 같던 鐘꽃// 도라지 너를 보면/ 三韓적 맑은 하늘/ 이슬 내리는 소리/ 胡弓 소리”
(송수권, ‘도라지꽃’ 전문)


도라지꽃은 부당한 죽음의 이미지만 뒤집어쓰지 않았다. 삼한 적부터 내린 맑은 이슬의 이미지이기도 하고, 아득한 고대에서 들려오는 피리 소리와 닮기도 했다. 울면서 천리 황톳길을 헤맸던 한하운 시인은 ‘이 강산 도라지꽃 빛 가을 하늘’이라고도 했다. 그렇지만 모든 꽃들의 처지를 도라지라고 피해가지는 못한다. 시인들은 도라지꽃에도 관능적인 여인의 이미지를 기어이 덧씌우고야 만다.

“사랑이 별것이더냐/ 슬퍼하는 일이제/ 밭이랑 사이로 철썩 철썩 파도치는 일이제/ 아직도 슬픔의 파도 출렁인다면/ 봉긋 봉긋 도라지꽃, 도라지꽃 피어날 수 있겠네// 꽃봉오리 깨물면 비릿한 향기/ 적막한 산천을 적시겠네// 찌르르 찌르르 봉분마다/ 숫처녀 적 도라지꽃 피어나겠네”
(박라연, ‘도라지꽃 피는 계절’ 부분)

도라지꽃의 봉긋한 모양, 그 꽃이 피어나는 심심산천의 청정한 배경, 그 환경 때문에 도라지꽃은 숫처녀의 젖가슴을 닮았다고 회자된다. 만지면 ‘찌르르 찌르르’ 몸을 떠는 깊은 산중의 숫처녀는 하필 아늑한 무덤가 적막한 산천에서 그렇게 전율한다. 아직 제대로 살아보지도 않은 그 숫처녀에게 시인은 자신의 설움을 함부로 투사하기까지 한다. 사랑이 별것이더냐, 슬퍼하는 일이제, 라고. 슬픔은 문학적으로 포장되면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자신의 일이 아니라 남의 감정이라면 더 그렇겠지만, 정작 그 슬픔을 앓는 사람에게는 지극한 고통이다. 사랑의 달콤함은 사랑 내내 길지 않고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은 번민하고 기다리고 갈증하는 고통으로 채워질 터이다. 그래도 인간들은 부나방처럼 그 고통의 시간을 향해 끝없이 달려간다.

“뙤약볕 여름 기울어지고 귀뚜라미 울면/ 나 산으로 들어갈 거야/ 머리 옥빛 나게 깎고 송낙 깊이 눌러쓰고/ 송이송이 살구꽃 눈바람에 날리던 날/ 나 버리고 훌쩍 떠난 그대 마을로/ 탁발가게/ 나무 관세음보살/ 사랑 시주하십시오.”
(한승원, ‘도라지꽃’ 전문)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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