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들 면제 이유엔 "아파서" 가장 많아
운동권 출신들 수형생활 사유면제 최다 국회만 열리면 장·차관을 앞에 세워놓고 호통 치는 국회의원들이 정작 병역의무 이행에서는 ‘꼴찌’였다. 의원 자신도, 2세들도 행정부 장·차관급 이상 공무원이나 사법부·검찰 간부들에 비해 이행률이 떨어졌다. 의원은 100명 중 24명꼴로, 2세들은 100명 중 12명꼴로 병역을 면제받은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부모 입장에서 아들의 병역 면제에 대해 “피치 못할 사정이었다”며 밝히는 나름의 이유는 있다. 들어보면 대개 그럴 듯하고, 또 실제 불가피한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면제율이 평범한 집안 2세들의 세 배에 달하는 현상을 우연이라고만 보기엔 석연찮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더욱이 면제 사유가 질병이 대부분인 점을 생각하면 의구심은 커진다. “왜 국회의원 아들 중엔 아픈 사람들이 그리도 많답니까?” “아픈 게 사실이라 해도 국회의원 아들이 아니라면 면제받을 수 있었겠어요?” 취재 과정에서 만난 상당수 사람들이 던진 질문이었다. 그들은 모두 군대를 다녀온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이었다.
◆질병으로 군대 못 간 국회의원 부자=국회의원 2세들의 군 면제 사유는 질병이 87%였다. 모두 24명이 면제받았는데, 21명이 질병에 따른 면제였다. 질병은 수핵탈출증(속칭 디스크), 체중과다, 급성간염, 기관지천식, 근시 등 다양했는데, 이 중 수핵탈출증이 5건으로 가장 많았다.
정당별로는 한나라당이 16명으로 전체 면제자의 66%를 차지했다. 김기춘 김병호 이상득 의원의 아들이 수핵탈출증으로 면제됐다. 이 밖에 박찬숙(기관지천식), 박진(비뇨기종양), 이규택(원시) 의원의 2세들이 질병으로 병역이 면제됐다. 열린우리당의 경우 면제가 6명이었는데 모두 질병이 이유였다. 김진표 의원(교육부총리)의 아들은 스트레스성 장애, 문희상 당 의장과 이계안 의원의 아들은 근시, 이용희 의원의 아들은 수핵탈출증으로 면제를 받았다.
국회의원 본인의 경우 질병으로 면제된 사례가 22건으로 전체 면제건수(62)의 36%였다. 정당별로는 한나라당 의원 14명이 질병으로 면제돼 질병 면제 의원의 63%를 차지했다. 이에 비해 열린우리당 의원 중 질병으로 면제된 사례는 6건(27%)에 그쳤다. 질병의 종류는 고도근시·난시(한나라당 곽성문 김양수 박형준 윤건영 최연희, 열린우리당 최규식 의원)와 각막혼탁(한나라당 이방호 의원), 양 안시력차(한나라당 이인기 의원), 백내장(민주당 이정일 의원) 등 눈 이상이 10건으로 절반에 육박했다.
◆금배지들의 해명=본인과 2세들의 병역 면제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해명은 구구절절하다. 한나라당 박찬숙 의원은 아들이 기관지천식으로 면제된 데 대해 “어려서부터 먼지를 마시면 숨을 쉬기 어려워질 정도로 천식이 심했다”며 “병무청에 가서 군대에 보낼 방법이 없느냐고 문의까지 했고, 담당자가 ‘이상한 엄마’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둘째아들이 고신경마비로 면제된 한나라당 안홍준 의원은 “초등학교 3학년 때 태권도장에서 추락해 다쳤고 지금도 보조기를 신고 있다”고 말했다. 이규택 의원은 차남이 원시로 면제된 데 대해 “원래 해병대까지 가려 했는데 눈이 나빠서 못간 걸 어쩌란 말이냐”고 했다.
우리당 김진표 의원 측은 아들이 스트레스성 장애로 면제받은 데 대해 “중학교 때 전교 수석을 하던 아이가 고교 입시에 낙방하면서 장애를 겪기 시작했는데, 군입대 후 논산훈련소에서 질병이 확인돼 퇴소당했다”고 말했다.
의원 본인 면제의 경우 한나라당 이인기 의원은 “양 안 시력차가 심했고 축농증까지 겹쳐 몸이 약한 편이었다”고 했다. 이해봉 의원 측은 “아홉 살에 부모님을 여의고 신문을 돌리며 고학하면서 폐결핵에 걸렸다”고 소개했다. 무릎관절 장애로 면제된 김재경 의원은 “초등학교 2학년 때 관절염을 앓아 대학 때 교련훈련도 받지 않았다”며 “내가 군대를 못 가 아들 셋은 착착 보내려 한다”고 말했다.
◆민주화운동과 병역 면제=의원들의 병역 면제 사유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수형’(25건, 전체의 40%)이다. 1970∼80년대 군사독재정권 시절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가 투옥으로 병역이 면제된 사례가 대부분이다. 이 같은 사례는 열린우리당에 집중됐는데,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된 이해찬 의원(국무총리)과 유기홍 유인태 강창일 의원, 1978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돼 ‘긴조세대’로 불리는 김부겸 노영민 안영근 의원, 이어 80년대 학생운동을 이끈 ‘386운동권’ 출신 선병렬 정봉주 송영길 윤호중 이인영 백원우 오영식 정청래 이화영 임종석 최재성 의원 등 20명이 수형으로 병역이 면제됐다.
한나라당에서는 박계동(75년 전국학생연맹사건으로 투옥) 이재웅(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 신상진(학생운동으로 구속) 고진화(85년 미문화원 점거사건 주도) 의원 4명이 수형으로 면제를 받았다. 김덕룡 의원의 경우 수형으로 병역이 면제된 것은 아니지만,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초를 겪은 뒤 병적이 아예 없어져 군대를 가지 못했다는 게 측근의 설명이다.
386운동권 출신 중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과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은 수형이 아니라 질병으로 병역이 면제된 경우다. 원 의원은 ‘우중족족지관절 조기강직 2개 족지 이상’(발가락 이상)으로 면제됐는데, 이에 대해 한 측근은 “어렸을 때 리어커에 발가락이 끼여 부러지는 사고를 당한 뒤 발가락이 지금도 꺾여 있다”고 말했다. ‘단지 논란’을 야기한 바 있는 이 의원은 ‘우수 제2수지 지절결손’으로 병역이 면제됐다.
정치부 기획취재팀=황정미·류순열·양원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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