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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꽃에게 길을 묻다]⑪전주 석류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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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07-15 19:28:00 수정 : 2005-07-15 19: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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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갠 아침 다홍치마 곱게 입고 永遠으로 시집가네 새벽까지 시인의 집 지붕과 돌담을 두드리는 빗소리 때문에 쉬 잠들 수 없었다.
아직 제대로 상면하지 못한 돌담 아래 석류꽃이 장맛비에 다 떨어져 버릴까 걱정스러웠다.
전주에 사는 안도현 시인이 석류꽃이 피었으니 내려오라고 했다. 모악산 아래 집필실 뜰에 석류꽃이 피었다고 했다.
하여 이번 꽃기행의 목적지를 흔쾌히 전주 쪽으로 잡았던 것인데, 어두운 밤에 도착해 아직 시인의 집 뜰에 피어 있는
석류꽃은 보지 못한 터였다. 전날 전주 덕진공원 호숫가에 피어 있는 석류꽃을 먼저 만나긴 했다.
그곳의 꽃은 아직 싱싱했고 오락가락하는 장맛비 속에서도 건재했다.
빗속에서도 벌들이 주홍의 꽃등불 위에서 열심히 꿀을 채취하고 있었다. 그 꽃들도 몇 번 더 비를 맞고 나면 곧 떨어질 것이다.

“뜰 안에 석류꽃이 마구 뚝뚝 지는 날, 떨어진 꽃이 아까워 몇 개 주워 들었더니 꽃이 그냥 지는 줄 아나? 지는 꽃이 있어야 피는 꽃도 있는 게지 지는 꽃 때문에 석류 알이 굵어지는 거 모르나? 어머니, 어머니, 지는 꽃 어머니가 나 안쓰럽다는 듯 바라보시고, 그나저나 너는 돈 벌 생각은 않고 꽃 지는 거만 하루종일 바라보나? 어머니, 꽃 지는 날은 꽃 바라보는 게 돈 버는 거지요 석류 알만한 불알 두 쪽 차고앉아 나, 건들거리고”
(안도현, ‘꽃 지는 날’ 전문)


꽃이 떨어져야 비로소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시인의 어머니도 지는 꽃이다. 그 지는 꽃이 있기에 ‘석류 알만한 불알 두 쪽’을 거느린 시인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석류는 생명의 나무로도 불린다. 민간요법에서 석류 열매는 말할 것도 없이 뿌리 껍질 꽃잎까지 유용하지 않은 게 없을 정도로 요긴한 나무다. 만성 관절염에는 말린 석류 껍질이, 부어서 아플 때는 석류 열매와 잎사귀가, 자궁출혈에는 말린 석류꽃이, 감기에는 껍질이나 뿌리를 달인 물이, 심지어 무좀에는 나무뿌리 껍질이 특효라고 알려져 있다.


석류의 원산지는 이란 쪽이다. 고대로부터 중동 지방의 특산물이었고, 에덴 동산 금단의 나무도 석류나무였을 것으로 초기 기독교에서는 상상했을 정도다. 그래서일까. ‘비너스의 탄생’으로 유명한 르네상스시대의 화가 보티첼리도 ‘석류의 성모’라는 유명한 그림을 남겼다. 아기 예수가 오른손으로는 강복(降福)을 하고 왼손으로는 성모의 손에 놓인 석류 껍질을 벗기려는 자태가 그려져 있다.

성모와 아기 뒤편에서는 우수에 찬 미소년들 6명이 서 있다. 미소년인지 소녀인지 분명하지는 않은 중성적인 이미지여서 천사로도 보인다.
흔히 석류는 꽃보다 가을에 열매를 맺어 반쯤 벌어진 석류 틈새로 보석 같은 알갱이가 햇살에 반사될 때의 아름다움을 절정으로 친다. 그렇지만 여름에 피는 석류꽃의 아름다움도 무시할 수 없다. 주홍의 맑은 빛깔은 따스한 열정의 극대치로 다가온다. 한국에는 대략 500여년 전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석류를 묘사한 시로는 단연 미당 서정주의 것이 돋보인다.

“春香이/ 눈썹/ 넘어/ 廣寒樓 넘어/ 다홍치마 빛으로/ 피는 꽃을 아시는가?// 비 개인/ 아침 해에/ 가야금 소리로/ 피는 꽃을 아시는가/ 茂朱 南原 石榴꽃을…// 石榴꽃은/ 永遠으로/ 시집가는 꽃./ 구름 넘어 永遠으로/ 시집가는 꽃.// 우리는 뜨내기/ 나무 기러기/ 소리도 없이/ 그 꽃가마/ 따르고 따르고 또 따르나니…”
(서정주, ‘石榴꽃’ 전문)


미당은 석류꽃의 맑은 주홍빛을 다홍치마빛이라고 했다. 그 다홍치마를 입고 ‘영원으로 시집가는 꽃’이라고 했다. 구름을 넘고 넘어 영원으로 시집가는 꽃, 그리하여 우리는 그 영원한 아름다움을 태운 꽃가마 뒤를 따르고 또 따를 뿐인 ‘뜨내기’라고도 했다. 그저 황홀하여 그 앞에 엎드려 영원히 경배하고 싶은 감동을 억누르지 못하는 시인의 감성이 차고 넘친다. 미당은 다른 시에서도 석류꽃의 ‘낭자한’ 주홍빛 아름다움을 끝없이 받든다.

“문득 면전에 웃음소리 있기에/ 취안(醉眼)을 들어 보니, 거기/ 오색 산호채(珊瑚采)에 묻혀 있는 낭자// 물에서 나옵니까.// 머리카락이라든지, 콧구멍이라든지, 콧구멍이라든지,/ 바다에 떠 보이면 아름다우렷다.// 석벽(石壁) 야생의 석류꽃 열매 알알/ 입술이 저… 이빨이 저…// 낭자의 이름을 무에라고 부릅니까.// 그늘이기에 손목을 잡았더니/ 몰라요, 몰라요, 몰라요, 몰라요.// 눈이 항만하여 언덕으로 뛰어가며/ 혼자면 보리 누름 노래불러 사라진다.”
(서정주, ‘高乙那의 딸’ 전문)


시인은 석류의 반쯤 벌어진 입술 안에 갇힌 이빨을 올려다보며 관능적인 상상력을 발동시킨다. 그러나 철저하게 감성을 배제하고 이성을 신봉했던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Paul Valery·1871∼1945)는 석류에서 관능보다는 영혼의 숨겨진 비밀을 보았다.

“넘치는 알맹이들에 못 이겨/ 반쯤 벌어진 단단한 석류들,/ 자신의 발견물로 터질 듯한/ 최고의 이마들을 보는 것 같구나!// 너희가 견뎌 온 나날의 해가,/ 오, 입 벌린 석류들아,/ 오만(傲慢)으로 다져진 너희로 하여금/ 루비 칸막이를 찢게 하였을 때,// 껍질의 건조한 금빛이/ 어떤 힘의 요구에 따라/ 과즙의 빨간 보석들을 터뜨릴 때,// 이 빛나는 파열은/ 내가 지녔던 영혼더러/ 자신의 은밀한 건축물을 꿈꾸게 한다.”
(폴 발레리, ‘석류’ 전문)


발레리가 처음부터 이성을 신봉하는 시작 태도를 보였던 것은 아니다. 그는 젊은 날 짝사랑에서 오는 절망감 때문에 감정에 몰두하기를 거부하고 철저하게 ‘지성의 우상’에 헌신하기로 작정했다. 하지만 발레리 또한 사랑이라는 ‘질병’으로부터 그 이후 완전히 자유로웠던 것은 아니다. 제 아무리 명징한 이성으로 자신의 의식을 관찰하고 분석하려 한 시인이었다지만 사랑 앞에서는 무력했고, 생사의 접경에서는 생에 대한 애정으로 강력하게 돌아섰다. 그는 석류 알알에서 영혼의 지도를 읽어내며 끝없이 마음을 다스리려 했을 뿐이다.
빗소리를 들으며 뜰의 석류꽃을 걱정하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시인의 집 창호지 바른 문이 환해질 무렵 눈을 떴다. 돌담 아래 석류꽃은 밤새 잘 있었다. 덕진공원의 석류꽃보다 초라하고 작기는 해도 시인의 애정을 듬뿍 받고 피어난 꽃이라서 그런지 애교를 떠는 어린 여자아이처럼 앙증스럽다. 돌담 너머로 개울이 흐르고 무성한 신록의 나무들이 배경으로 서 있다. 초록의 짙은 배경 속에 다홍치마 붉은빛으로 점처럼 박혀 있는 석류꽃. 시인은 밤새 잘 견디어 준 그녀에게 반갑게 입을 맞춘다.

“마당가에 석류나무 한 그루를 심고 나서/ 나도 지구 위에다 나무 한 그루를 심었노라,/ 나는 좋아서 입을 다물 줄 몰랐지요/ 그때부터 내 몸은 근지럽기 시작했는데요,/ 나한테 보라는 듯이 석류나무도 제 몸을 마구 긁는 것이었어요/ 새 잎을 피워 올리면서도 참지 못하고 몸을 긁는 통에/ 결국 주홍빛 진물까지 흐르더군요/ 그래요, 석류꽃이 피어났던 거죠/ 나는 새털구름의 마룻장을 뜯어다가 여름내 마당에 평상을 깔고/ 눈알이 붉게 물들도록 실컷 꽃을 바라보았지요/ 나는 정말 좋아서 입을 다물 수 없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가을이 찾아왔어요/ 나한테 보라는 듯이 입을 딱, 벌리고 말이에요/ 가을도, 도대체 참을 수 없다는 거였어요”
(안도현, ‘석류’ 전문)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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