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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와 사람들]네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이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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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06-24 11:24:00 수정 : 2005-06-24 11: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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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사랑할 줄 아는 희아
"이젠 노래하고 싶어요"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이희아. 그는 남다른 신체 조건을 장애가 아닌 자신만의 특징으로 승화시켰다. 이제 그는 호기심 어린 대상을 넘어 고유한 세계를 가진 음악가로 자리매김하려 한다.
이희아(여·20)는 ‘선천성 사지기형 1급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한 손에 2개씩 네 손가락만을 지녔고 허벅지 아래로는 다리가 없다.
손가락 힘을 키워야 했기에 6살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했다. 건반 소리를 내는 데만 6개월이 걸렸다.
“매일 피아노를 연습하느라 손가락이 까져 피가 나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였다.

그는 피아노 연습을 시작한 지 1년 반 만인 1992년 전국학생연주평가회 유치부에 출전해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는 이희아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첫 계기이기도 했다. 이후 각종 대회에서 상을 받았고 유명 연주자들과 협연했다. 이희아는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란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일본 호주 미국 등지로 해외공연을 다녔고, 장애극복 대통령상, 신지식인 청소년상, 문화예술인상 등도 수상했다.
이희아는 피아니스트로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가고 있다. 지난 12일에는 영국에서 템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그동안 세계 여러 무대에 서기는 했지만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처음이다. 그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을 완주했고, 앙코르곡으로 ‘희아송’을 연주해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는 여느 피아니스트보다 더한 노력을 해야 한다. 적은 손가락과 짧은 다리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뇌에도 문제가 있기 때문에 5분 이상 곡을 외우면 두통에 시달린다. 그런 그가 책 한 권 분량의 곡을 외워 30분간 완주했다는 것은 헤아릴 수 없는 노력의 결과다. 요즘도 피아노를 치다가 그 옆에서 밥 먹고, 구석에서 잠드는 하루하루가 이어진다. 그는 “모차르트 ‘협주곡 21번’을 완주했으니까 이제는 17번에 도전할 것”이란 의지를 보인다.
그는 얼마 전 생애 첫 음반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희아’(뮤주)를 내놓았다. 쇼팽 ‘즉흥환상곡’, 브람스 ‘헝가리 무곡’, 슈베르트 ‘세레나데’ 등 평소 그가 좋아하던 클래식 곡을 담았다. 그가 직접 부른 ‘어메이징 그레이스’, 음반을 프로듀싱한 스티븐 문(한국명 문소연)이 희아를 위해 작곡한 ‘희아송’도 함께 실려 있다. 몇 곡을 제외한 나머지는 2002년 무렵 녹음한 것이다.

음반 출시를 두고 망설이기도 했다. 네 손가락 연주는 아무래도 열 손가락으로 연주하는 것에 못미칠 수밖에 없다. 어머니는 ‘희아가 연주하는 모습을 빼고 음악만을 듣는 것이 감동을 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렇지만 다른 연주와 비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희아 소리니까 듣고 싶은 것이라고요. 템포가 느려도 그대로 희아의 역사가 담겨 있는 것이니까 일단 내놓자고 결정했죠.”
이희아는 있는 그대로 자신을 사랑한다. ‘TV에서 봤다’며 쳐다보고 말을 거는 사람들에게도 ‘안녕하세요’라며 해맑은 얼굴로 스스럼없이 대한다. 집에서 자연스러운 모습을 찍은 첫 음반의 사진만 해도 그렇다. 어머니는 이 사진을 마음에 안 들어하지만 희아는 아무렇지도 않다. “사진이 복돼지처럼 나왔어요. 그렇지만 내 외모가 그런 걸 어떻게 해요. 나는 나일 뿐인데요.”
그는 지난 3월 한국재활복지대학 멀티미디어음악과에 입학한 어엿한 대학생이다. 요즘 초등·중학교에서 연주 활동을 하느라 대학 생활은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당초 작곡가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작곡을 공부하기 힘들 것 같다. “연주 활동이 많아서 시간도 부족하고요. 뇌 문제 때문에 산수가 힘들어서요.”
대신 요즘에는 팝페라 가수라는 꿈을 하나 더 추가했다. 어릴 때부터 워낙 노래를 좋아했다. 지난 14일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잘츠부르크 오페라 페스티벌’의 개막식은 그의 꿈을 실현한 자리였다. 그는 우크라이나 심포니 오케스트라(지휘 김수범)의 연주에 맞춰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불렀다. 이 오페라 축제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30일 폐막공연 무대에도 선다. 그는 이 곡을 영국에서 템스 필하모닉의 연주에도 맞춰 불렀다. 그는 “엘튼 존처럼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에게는 초등학생 팬이 많다. “어린 학생들이 저를 좋아한다니 감사한 일이죠. 좋은 음악을 듣고 자라야 할 시기에 저를 통해서 클래식에 접할 수 있는 거잖아요. 정통 클래식을 연주하지만 몸짓은 엔터테이너처럼 하는 거예요. 연주마다 이야기도 덧붙이고요. 그렇게 해서 관객이 즐거움을 느끼고 클래식에 다가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오는 9월 KBS교향악단과 협연하고, 독주회를 열 계획이다. 독주회에 초대할 연주자는 피아니스트 리처드 클레이더먼. 이희아의 이야기를 들은 그는 “피아노를 왜 연주해야 하는지 알겠다”고 말했단다. “제가 좋아하는 연주자와 한 무대에 설 수 있게 돼서 기뻐요. 그의 연주에 맞춰 제가 노래를 부르는 순서도 마련할 거예요.”
이희아는 똑부러지는 목소리로 말한다. “제 꿈은 예술가예요. 감동을 주는 음악을 하고 싶습니다.”
글 이보연, 사진 김창길 기자
byabl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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