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에서 영덕으로 넘어가는 관문이자 무릉도원으로 내려가는 고갯길이다.
이곳에서부터 영덕까지 34번 국도 연변은 바야흐로
복사꽃들로 붉은 바다를 이룰 터이다.
복사꽃 춘정에 미리 뛰는 가슴을 애써 달래며 구불구불한 길을 내려와
천천히 달리는데, 아뿔싸 복숭아나무에 꽃이 없다.
그제야 주초에 영덕군청 공무원에게 들었던 말이 실감난다.
주말에는 꽃이 질지도 모른다고 그는 전화선 저쪽에서 걱정스럽게 말했다.
공무원의 말을 믿지 않은 게 화근일까.
아니, 믿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금년에는 꽃들이 최소한 2주일 정도 늦게 피는 데다,
연전 이즈음 이곳에 들렀을 때 꽃들은 절반밖에 개화하지 않았다.
그 감각을 너무 믿은 게 잘못인 모양이다.
서서히 영덕을 향해 달리기는 하지만, 암담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영덕 쪽으로 내려갈수록 개화시기가 빠른데, 황장재 쪽 길에 복사꽃들이
다 졌다면 더 이상 달려본들 소득이 없을 건 뻔하다.
“흰 복사꽃이 진다기로서니/ 빗날같이 뚝뚝 진다기로서니/ 아예 눈물짓지 마라 눈물짓지 마라……// 너와 나의 푸른 봄도/ 강물로 강물로 흘렀거니/ 그지없이 강물로 흘러갔거니// 흰 복사꽃이 날린다기로서니/ 낙엽처럼 휘날린다 하기로서니/ 서러울 리 없다 서러울 리 없어……// 너와 나는 봄도 없는 흰 복사꽃이여/ 빗날 같이 지다가 낙엽처럼 날려서/ 강물로 강물로 흘러가 버리는……”(신석정, ‘서정가·抒情歌’ 전문)
지는 복사꽃잎이라도 보았다면 석정의 슬픔이라도 함께 느꼈으련만, 복사꽃은 흔적도 없다. 고래로 대부분의 문사들은 복사꽃에서 요염한 여인의 이미지를 떠올리거나 고향의 상징적인 꽃으로 대접했다. 그러나 석정은 유난히 지는 복사꽃에 더 연연해했다. 식민지의 우울 때문이었을까. 물론 그 또한 복사꽃에서 고향을 떠올리기는 했지만 그때마저도 “한 이파리/ 또 한 이파리/ 시나브로 지는/ 지치도록 흰 복사꽃”을 언급하며 “늙으신 아버지의/ 기침소리랑/ 곤때 가신 지 오랜 아내랑/ 어리디어린 손주”를 그리워했다. |
암담한 심사로 달려가는 국도 연변에 언뜻 붉은 기운이 스치는가 싶더니 복숭아나무 가지에 서서히 꽃이 보이기 시작한다. 필름을 거꾸로 돌리는 것처럼 떨어진 꽃들이 나뭇가지로 달라붙는 중인가. 뛰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유심히 보니 이제 복사꽃 붉은 여인들은 막 화장을 마치고 유치환의 시처럼 ‘열 여듧 아가씨의 풋마음 같은/ 새빨간 순정의 봉오리’를 선보이는 중이다. 책상머리 공무원의 한마디에 너무 낙담한 사실이 억울하지만 바야흐로 꽃을 볼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영덕 쪽으로 나아갈수록 붉은빛은 더 진해진다.
“임자 없는 복사꽃 상사병에 걸려/ 눈부신 햇살에 뒤틀리고 있다/ 모두 홀랑 벗었다// 복사꽃 피는 날”(이생진, ‘홀랑 벗은 복사꽃’ 전문)
복사꽃 그늘 아래로 걸어들어간다. 이생진 시인이 흥분한 것처럼 아닌게 아니라 복숭아나무 가지들은 몸을 비틀며 교태를 부리고 있는데 그 정점에서 복사꽃 붉은 얼굴이 요염하다. 엷은 회색빛 가지를 손으로 쓰다듬어보니 여인의 살처럼 매끄럽다. 이런 모습 때문에 사주팔자에 ‘도화살’(桃花煞)이 끼면 남자든 여자든 과도하고 잘못된 성욕으로 재앙을 당하게 된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복사꽃으로서는 인간들이 그들을 바라보며 춘정은 춘정대로 즐기면서 뒤돌아서서 욕을 해대는 꼴이니 억울할 수도 있겠다. 이생진 시인은 ‘복사꽃’에서 “나만 아는 한 그루 복사꽃나무/ 내가 갈 때마다 흥분한다”고 애꿎은 복사꽃 여인을 희롱했다. 그런가 하면 풋내 나는 사랑의 비릿한 아름다움을 애교스럽게 복사꽃 연분홍 이슬비에 적시는 시인도 있다.
“한길로만 오시다/ 한고개 넘어 우리집./ 앞문으로 오시지는 말고/ 뒤ㅅ동산 새이ㅅ길로 오십쇼./ 늦은 봄날/ 복사꽃 연분홍 이슬비가 나리시거든/ 뒤ㅅ동산 새이ㅅ길로 오십쇼./ 바람 피해 오시는 이처럼 들레시면/ 누가 무어래요?”(정지용, ‘무어래요’ 전문)
영덕이 가까워질수록 황장재 아래서 낙담했던 사실이 생각할수록 우스워진다. 꽃들은 화려하게 피었고, 오십 갈래에서 흘러든다 하여 ‘오십천’이라 명명된 강 위로 얼비치는 복사꽃 붉은 그림자가 선경이다. 강 언덕에 저마다 몸을 비틀며 꽃을 매단 복숭아나무들 아래 붉은 밭으로 석양이 내리기 시작한다. 강물도 붉고 언덕도 발갛다. 이백은 ‘산중문답’에서 이런 정경을 일컬어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라 했다. 뒤집어보면 인간세상의 풍경이 이렇듯 아름다울 수 없으리라는 비애가 깔려 있는 표현이기도 하다. 너무 아름다우면, 혹은 행복한 느낌이면, 불행에 더 익숙한 인간들은 그 상황을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심지어 슬픈 일이라도 생겨 달라고 기도하는 시인까지 있다.
“복사꽃 픠고, 복사꽃 지고, 뱀이 눈 뜨고, 초록제비 무처오는 하늬바람 우에 혼령 있는 하눌이어. 피가 잘 도라… 아무 病도 없으면 가시내야. 슬픈일좀 슬픈일좀, 있어야겠다.”(서정주, ‘봄’ 전문)
우리네 피 속에는 비애의 유전자라도 흐르는 것일까. 유치환은 ‘복사꽃 피는 날’에서 “내 호젖한 폐원(廢園)에 와서/ 가느다란 복숭아 마른 가지에/ 새빨갛게 봉오리 틀어 오름을 보았”다며 “오오 나의 우울은 고루(固陋)하야 두더쥐/ 어찌 이 표묘(漂渺)한 계절을 등지고서/ 호을로 애꿎이 가시길을 가려는고// 오오 복사꽃 피는 날 왼종일을/ 암(癌)같이 결리는 나의 심사(心思)여”라고 영탄한다. 복사꽃을 보아도 춘정이 동하지 않는 우울한 심사를 그는 슬퍼한다.
식민지 세월을 거쳐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비애의 유전자는 디지털시대의 오기와 맞물려 화학변화라도 일으키는 것일까. 오세영 시인은 “이제 붙들지 않을란다./ 너는 복사꽃처럼 져서/ 저무는 봄 강물 위에 하롱하롱 날려도 좋다 아니면/ 어느 이별의 날에/ 네 뺨을 적시던 눈물의 흔적처럼/ 고운 아지랑이 되어 푸른 하늘을 어른거려도 좋다”고 ‘이별의 날에’ 짐짓 호기를 부린다. 어두워지는 무릉의 언덕을 떠난다. 영덕의 푸른 바닷가로 가서 ‘도화살’ 스며든 붉은 가슴을 씻어야 하리라. 그렇지만 그마저 쉽지는 않겠다. 젊은 시인 안도현이 바닷속에까지 복숭아밭을 일구어놓고 기다리는 중이다.
“이 지상에는 없는 복숭아밭이 바닷속에 있는 게 틀림없다/ 수족관 속 저 도미 좀 보아라,/ 꽃 핀 복숭아나무에다 얼마나 몸을 비벼댔으면/ 저렇게 비늘 겹겹이 발갛게 물이 들었겠느냐/ 사랑이란, 비린 몸을 달구는 일이었으리라/ (중략)/ 봄날 복사꽃 난만, 난만하게 흩날리는 것처럼/ 지금 횟집 유리창 밖에는 눈이 내리고,// 저녁 여섯 시/ 사랑이라는 말이 아프고 무거워서/ 무릉도원에 가지 못하고/ 소주 첫 잔에 목구멍에서 똥구멍까지 찌르르 숨통이 트이는가/ 벗이여, 도미 좀 보아라/ 어깨가 돛배같이 얇은 사내들 앞에서/ 마침내 옷을 가지런히 벗고 눕는 것을// 하늘도 제 살을 맛있게 저며 뿌려주는 날,/ 술잔에 꽃잎을 띄워 마신들 한량이 되겠느냐/ 눈발처럼 코를 박고 평펑 운들 사랑이 오겠느냐”(안도현, ‘도미’)
조용호 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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