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는 지난해 영화 ‘주홍글씨’에 출연해 화제가 됐다. 이씨의 경우 다른 스타급 여배우들이 노출 수위에 민감한 데 반해 일찌감치 스무살 꽃다운 나이에 영화 ‘오! 수정’(감독 홍상수)에서 상반신을 드러내는 연기를 감행하는 등 과감함을 보였다. 하지만 작품의 노출과 개인으로서의 이미지를 놓고 수치감과 갈등이 없진 않았음을 보여준다.
평소 친분이 두터운 사이로 영화 촬영 당시 이씨와 전화 통화를 자주 했다는 가수 전인권은 “벗는 것 때문에 괴롭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전했다. ‘주홍글씨’에서 이씨는 전라로 등장하는 정사신을 촬영했으며 트렁크에 갇혀 피범벅이 된 상태에서 죽음을 맞는 연기를 했다.
지난해 ‘주홍글씨’ 촬영을 앞두고 모 스포츠지 인터뷰에서 이씨 소속사 측은 “자기 주장이 센 역할이어서 화끈한 노출을 선보인다는 게 시나리오의 설정이다. 자칫 벗는 연기로만 폄하되지 않을까 염려돼 노출 강도를 조절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간 영화제작사에서는 종종 여배우의 노출을 조장하고 이용해왔다. 여배우의 노출이 상품 효과로는 그만이기 때문이다. ‘주홍글씨’ 출연이 이은주씨 자살 원인 중 하나라는 추측이 난무하자 이 영화의 제작사인 LJ필름의 한 관계자는 “이은주씨의 고민은 다른 여자 연기자들이 영화에 대해 느끼는 부담감과 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제작사들은 “좋은 연기를 위해서는 과감한 노출이 필요하다”며 “옷 벗지 않는 배우는 몸사리는 연기자”라고 낙인찍으며 영화를 찍었다. 이은주씨는 영화 ‘주홍글씨’개봉을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베드 신 장면은 무려 33번이나 찍을 만큼 고생했다”고 말했을 정도로 노출장면에 대해 심리적 부담감을 갖고 있었다.
최근 한국 영화 전성기의 햇볕 아래 제작사들의 입김이 커지면서 대표적인 여배우들도 너도나도 옷을 벗고 있다. 전도연은 영화 ‘해피엔드’ ‘스캔들’에서, 김혜수는 ‘얼굴없는 미녀’에서, ‘박하사탕’의 문소리는 ‘바람난 가족’으로, 배두나는 ‘복수는 나의 것’에서, 성현아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 알몸을 드러냈다.
문화평론가 이동연(문화연대 문화사회연구소장)씨는 “자살의 직접요인이 노출연기 때문이라고만 볼 수는 없지만, 이은주씨가 내성적인 성격이라서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본다”면서 “‘주홍글씨’의 경우 노출 문제 외에도 영화 캐릭터 자체가 자신의 의도대로 표현되지 못했고, 흥행성적도 기대 이하였던 데 따른 복합적인 문제일 수 있다”고 말했다.
여배우들에게 옷을 벗게 한 대부분의 영화는 팬의 성원을 그다지 받지 못했다. 영화 완성도와는 무관한데도 눈요깃감으로 여배우를 벗기는 것은 한국영화의 수준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한국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이런 지적을 귀담아 들을 때다.
김은진 기자 jisland@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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