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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봉의 영화산책]''알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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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4-08-20 14:52:00 수정 : 2004-08-20 14: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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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광기''는 빛났지만 ''전쟁의 음모'' 표현엔 미숙 베트남전을 소재로 한 ‘알 포인트’는 극한상황 속에서 광기에 휩싸여 가는 인간 군상들을 소름끼치게 묘사하고 있다. 1972년 1월 베트남의 나트랑. 최태인 중위(감우성)는 혼바우 전투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다. 그는 악몽에 시달리며 힘겨운 날들을 보낸다. 부대장은 비밀수색 명령을 내린다. 6개월 전 알 포인트에서 실종되어 모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18명의 수색대원들 생사를 확인하라는 것이다.
알 포인트에 도착한 9명의 병사들이 제일 먼저 목격한 것은 바위 위에 새겨진 ‘不歸’라는 한자어다. 과연 병사들은 무사히 부대로 복귀할 수 있을 것인가? 거대한 역사 속에서 희생당하는 개인들의 존재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알 포인트에서는 1차 베트남전 당시 프랑스 병사들 수백명이 실종된 역사가 있다. 그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는가? 이 영화의 밑바닥에는 실종이라는 테마가 숨어 있다. 그것은 전쟁의 집단적 광기로 연결된다.
검푸른 밀림의 정글, 그 속에서 마주치는 흰 옷 입은 소녀의 잔영, 밀림 속에서 노숙을 하고 새벽에 잠을 깼을 때 눈앞에 드러난 거대한 폐허의 저택. 물속에 가라앉은 수십 구의 시체, 그런 이미지들은 범속한 일상에 치여 살아가는 우리를 뒤흔든다. 특히 정글이라는 특수공간, 열려 있으면서도 닫혀 있는 그 이상한 공간은 무수히 많은 눈들에 의해 자신들이 노출되어 있다는 환상을 갖게 한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갈수록 의심은 증폭되며 분열은 극대화된다. 이제 그들은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눈다.
영화는 대부분 9명의 부대원들에 의해서 진행되기 때문에 배우들의 호흡은 매우 중요하다. 감우성은 ‘결혼은 미친 짓이다’보다 훨씬 진일보된 내면연기를 보여준다. 형체를 드러내지 않는 전쟁의 배후세력에 대한 분노, 그 광기에 점점 미쳐가는 역을 차가운 눈빛과 메마른 어조로 잘 형상화하고 있다. 최태인과 각을 세우는 진 중사 역의 손병호도 좋다. 결정적인 실수는 장 병장(오태경)의 캐스팅이다. 그의 발성은 배역과 밀착되지 못해서 허공에 떠 있다.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방해한다. 마지막 결말 부분에 그에게 주어진 무게를 생각하면, 장 병장의 연기를 감독은 더욱 세심하게 다듬었어야만 했다.
‘알 포인트’가 놓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각 개인의 광기 뒤에 음험하게 자리 잡고 있는 이 거대한 전쟁이라는 집단적 음모다. 그 실체가 뚜렷하게 드러날 필요는 없지만 언뜻언뜻 행간의 여백처럼 스며 나왔어야만 했다. 호러의 최고 상태는 순간적인 음향효과나 귀신의 등장, 혹은 잔혹함으로 일시적 놀람의 상태를 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사실은 거대한 음모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는, 왜소한 개인들은 거대한 조직의 틈바구니에서 결코 이길 수 없다는,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무서운 공포라는 깨달음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알 포인트’에는 그것이 부족하다.
그러나 엔딩 신은 서늘한 감동을 주는 데 부족함이 없다. 다소 지루하기까지 하던 화면은 돌연 광채를 빛내며 우리를 사로잡는다. 그러나 주제는 처음부터 결말까지 힘 있게 나가지 못한다. 호러 영화의 상업성을 의식해서 귀신 쇼트가 남발되고 있고, 무의식 속에 잠재된 집단적 광기의 드러냄이 치밀하게 형상화되지 못한 것은 초보 연출(공수창 감독)의 미숙함 때문이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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