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의 발단은 지난 10년간 페소화가 美 달러화에 1대1로 고정돼 아르헨티나 경제는 최근 아시아, 러시아, 브라질 위기에 따른 경쟁력 상실에 탄력 대응할 수 없었고, 누적된 외채 1320억달러를 갚을 능력을 상실한 데서 비롯됐다.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으려 했지만 재정적자목표를 제로로 줄일 예산안이 의회의 승인을 얻지 못해 외부자금줄마저 끊겨 디폴트(외채상환불능) 상태로 몰린 것이다.
위기를 피할 기회는 과거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97년 아시아 위기의 여파가 몰려올 즈음 당시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은 3선 출마를 모색중이어서 인기없는 구조조정에 임하려 하지 않았고, 99년 12월 출범한 중도좌파 정부는 노동개혁에 손대려다 뇌물스캔들에 휘말려 부통령 사임, 연립 붕괴, 경제각료간 이견대립, 연쇄사임 등에 시달려야 했다. 지난 3월 재등용된 도밍고 카발로 경제장관마저 부패 혐의로 제소돼 출국정지령이 내려졌다. 우유부단한 대통령의 성격마저 겹쳐 정부의 일관성있는 위기대응책은 기대할 수 없었고, 지난 2년은 무정부상태나 다름없었다.
지금 임시정부가 내놓은 평가절하 거부, 외채상환 유예, 채무상환 재협상, 일자리 창출 등의 위기관리 계획도 정면돌파식의 해결이 아닌 임시방편용일 뿐이다. 내년 3월 치러질 보궐 대통령선거에 손상을 입지 않으려는 정치적 계산이 농후하다. 미국과 IMF의 입장이 철저한 구조조정, 재정적자 해소에 역점이 두어져 국제지원은 미온적일 것이며, 중장기적으로 정치사회적 불안은 가중될 것 같다.
물러난 카발로 경제장관은 아르헨티나를 "반항하는 10대"에 비유했었다. 쓴 맛을 보기 전에는 이성(理性)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웃나라 칠레가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해 80년대 후반 각고의 경제구조조정을 단행했고, 브라질이 지방재정 적자와 구조조정 지연 때문에 90년대말 재정위기를 겪었지만 아르헨티나는 이를 남의 일로만 여겼다.
종종 나타난 사회경제 개혁노력은 번번이 거센 저항에 부딪쳤다. 아르헨티나 경제의 독소인 외채와 재정적자가 그토록 누적된 근본원인은 정부지출 과다와 탈세, 공직사회의 부패 때문이다. 89∼99년 메넴 전 대통령은 공공부문 부담 축소를 위해 공기업 민영화를 대대적으로 추진했지만 집권기간동안 정부지출은 오히려 국내총생산(GDP) 대비 8.9%에서 21%로 늘어났고, 정부부채도 30%수준에서 46%로 증가했다.
그 이유는 과거 페론시대에 시도한 유럽식 복지국가 이념에 안주하려 하기 때문이다. 지난 70년대 후안 페론 대통령은 노동자들을 위한 연금과 각종 사회보장혜택을 부여하기 위해 정부부담을 대폭 늘렸었고, 자신의 노동계층 정치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노조에 많은 권한과 정치참여를 보장했다. 20세기초까지 아르헨티나는 농축산물 수출대국이었지만, 20세기 후반부터는 녹색혁명과 유럽의 공동농업정책(CAP) 때문에 수출이 정체되어 복지국가 이념은 벅찬 것이었다. 메넴의 10년간 개혁도 외국인투자 개방이나 자동차 등 일부 수출산업 증진에 그쳤을 뿐 정부재정 건전화에는 손을 대지 못했다.
아르헨티나의 오늘의 사태는 정치논리를 앞세운 정부지출, 방만한 지방재정 운용, 공직사회의 부패, 정치분열, 변화 거부세력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 金元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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