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간혹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발견된다. 이들을 일컬어 통각불감증 환자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몇년전 딱 한 사람이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있었다. 가장 유명한 임상 예로는 영국의 앤드루스라는 소녀의 경우다. 이 소녀는 발목이 여러 조각으로 골절된 것도 모르고 몇달을 견뎌냈다고 한다. 이 소녀는 그후 쉰살이 되기까지 단 세번,그것도 정상인이라면 격렬한 고통을 느꼈을 경우에 약간 아픔을 느꼈을 뿐이라고 한다.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있는 위기관리능력이 이 경우엔 전혀 없거나 아주 미약하다는 얘기다.
자연계의 모든 생명체뿐 아니라 유기체적 기능을 갖는 사회조직에서도 이 위기관리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조직이 생명을 부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기능의 하나로 손꼽힌다. 그런데 가끔은 위기에 둔감한 경우가 있다. 마치 통각이 마비된 듯 웬만한 고통쯤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회적 불감증이 그것이다.
지금 우리 경제는 중병을 앓고 있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올라 서민들의 고통이 자심하다. 또 경쟁력의 현저한 약화로 수출전선엔 먹구름이 끼고 있다. 농촌에선 UR협상 때문에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증권에다 알토란같은 돈을 집어넣었던 중산층들은 그새 빈털터리가 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산업현장에선 갈수록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아우성이다. 국제수지도 적자로 돌아섰고 통화증발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은 자금난으로 고통받고 있다.
그럼에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당국의 태도는 왠지 안이하게 보일 뿐이다. 그들은 둔통조차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서민의 고통이 뼈속을 찌르는 듯 강렬한 데 비긴다면 아무래도 우리 경제팀을 통각불감증 환자로 불러야 할까보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