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들어서고 지난 16일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취임했다. 필자는 그분에 대해 잘 아는 바가 없으나, 2023년 6월 서울대 분배정의연구소가 주최한 ‘애덤 스미스 경제학의 현대적 재조명’이라는 제목의 스미스 탄생 300주년 기념학회에서 본 기억이 난다. 필자는 당시 독일 질서자유주의 계열의 경제학자들, 스미스의 국부론과 도덕감정론에 대해 공부하던 중이라 학회 발표를 들으면서 스미스와 관련된 다양한 시각을 접할 기회가 되었다.
신임 위원장 취임사 내용을 뜯어보면 기존의 공정거래 정책을 바탕으로 여러 핵심적인 정책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데, 요약하면 4가지 정도로 정리된다.
첫째 일성(一聲)으로 혁신적 중소·벤처기업의 성장과 소상공인의 경제적 자유, 기술 탈취, 부당대급 지급 등 불공정 관행 근절, 가맹본부·원사업자 등 경제적 강자에 대항하는 약자의 협상력 제고를 핵심 정책으로 먼저 제시했다.
둘째 기업집단에 대해서도 집단 내 사익 편취, 부당 지원 등에 대한 감시의 고삐를 죄겠다고 강조했다.
셋째 온라인 플랫폼 시장을 경제적 약자의 생계와 일자리 그리고 소비자 후생에 밀착된 시장으로 보고, 거래질서 공정화 규율을 세우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마지막으로 서민과 경제적 약자 보호, 소비자 주권 확립, 불공정거래 행위로 인한 중소기업, 소비자 피해의 신속하고 효과적인 구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취임사의 내용을 보면 경제적 약자·서민의 보호와 같은 갑을 관련 정책이 한층 더 강화될 것임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그간의 공정거래 정책에서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던 내용이라면 ‘중소기업·소비자 피해의 신속하고 효과적인 구제’인데, 불공정거래로 인한 과징금의 일부를 중소기업·영세상인의 피해구제기금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조정제도를 강화하는 것도 그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취임사에서 필자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그 중심에 스미스가 있다는 것이었다. 취임사를 살펴보면 “경제적 강자만이 아니라 경제적 약자도, 부자만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도, 모두가 자신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자유를 평등하게 누리는 것, 그것이 바로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자연적 자유입니다”, “이런 자연적 자유의 체계 안에서 완전한 정의, 완전한 자유 그리고 완전한 평등을 확립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계급에 가장 높은 번영을 보장하는 비결이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공정위의 사명은 스미스가 말한 자연적 자유의 체계를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러분 한분 한분과 합심하여 스미스의 완전한 정의, 완전한 자유, 완전한 평등의 공동번영 사회를 이루는 길을 열겠습니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스미스는 중상주의 국가 운영에서 벗어나 개방과 경쟁원리에 입각한 국가경제 운영을 주창하고 이기심을 국부의 원천으로 보았지만, 극단적 이기주의나 자유방임을 말한 적은 없다. 스미스의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신화가 가져온 자유방임주의자라는 이미지는 다소 과장된 셈이다.
주 신임 공정거래위원장 취임사의 내용은 스미스가 300년 전 “완전히 자유롭고 공정한 자연적인 체계(natural system of perfect liberty and justice)는 어떤 방식으로 점차 회복되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이런 문제를 장래의 정치가와 입법가의 지혜에 맡겨둘 수밖에 없다”고 던진 화두에 대한 후세대의 답변이라고 생각된다.
스미스가 다시 나타난다면 현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지 자못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가 말한 대로 자유로운 시장경제가 그 기본이 되어야 한다. 독점과 탐욕에 대항해 싸워나가되 획일적 공정이나 무분별한 일방적 보호는 자제할 필요가 있다. 그 한계를 설정하는 일이 경쟁정책의 임무가 될 것이다. 더 발전한 모습의 공정위가 기대된다.

신동권 법무법인 바른 고문(전 공정거래조정원장) dongkweon.shin@barun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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