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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빌려주기 전엔 '갑'…빌려주는 순간 '을' [일상톡톡 플러스]

입력 : 2018-12-16 05:00:00 수정 : 2018-12-15 13:2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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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안 당해보면 몰라요. 절대 남에게 돈 빌려주지 마세요. 빌려주는 순간 을도 아닌 '정'이 됩니다"

"한 손으로 빌려주고 두 손으로 돌려받는다는 게 농담 같죠? 내 손 떠나는 순간 내 돈이 아닙니다"

유명 래퍼 마이크로닷, 배우 안재모 등 연예인들을 대상으로 이른바 '빚투(나도떼였다)' 논란이 더욱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가족이나 친척, 지인 등에게 돈을 빌린 뒤 제때 갚지 않아 법적 다툼을 벌이는 사건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포화상태에 이른 은행대출과 금리인상 등으로 서민대출 문턱이 높아지면서, 가족이나 지인 등 사적인 신뢰관계를 통해 금전거래를 하는 경우가 증가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적 금전거래 분야의 질적 발전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민사사건뿐만 아니라 형사사건으로 비화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안전한 서민대출 경로를 확대하고, 개인 간 금전거래에 대한 의식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합니다.

◆서민들 대출 문턱 높아져…가족·지인과 사적 금전거래 ↑

돈을 떼먹는 차용 사기는 해마다 2만여 건씩 꾸준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경찰 통계자료에 따르면 차용 사기는 2014년 2만3832건, 2015년 2만5641건, 2016년 2만5891건, 지난해 2만3714건 발생했습니다. 올해도 지난달 말 기준으로 2만2020건이 있었습니다.

범죄 피해 액수는 100만원 이하가 30.5%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 1000만원 이하(24.8%), 1억원 이하(22.0%) 순이었습니다. 피해 액수가 1억원을 넘어가는 범죄도 7.6% 수준으로 적지 않았습니다.

차용 사기는 전체 사기 수법 중 10.7%를 차지합니다. 사기 10건 중 1건에 달한다는 뜻입니다.

경찰은 "빌려준 돈을 제때 받지 못해 당국에 수사를 의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큰 범주에서 볼 때 차용 사기는 전체 사기범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차용 사기가 늘어난 이유는 서민들이 금융기관을 통해 대출받는 길이 좁아져 사금융을 통한 대출이 늘어났기 때문이란 분석입니다. 서민대출 환경이 급속도로 나빠지면서 금융 취약계층이 불법 사금융 등 제도권 밖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서민금융연구원이 최근 공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 응답자의 22.9%가 대부업체 대출거절을 경험했고, 15.0%가 대출이 거절된 뒤 사금융을 이용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사금융 이용 증가는 제도권 금융기관 대출이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 규모는 지난해 말보다 41조5000억원 증가한 590조7000억원에 달했습니다. 올해 10월까지 개인사업자 대출 증가액이 22조300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현재 자영업자 대출규모는 600조원을 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은행대출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서민대출 문턱도 높아지고 있는 형국입니다. 결국 은행대출 수요는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상호저축은행·새마을금고 등 비은행 예금 취급기관으로 옮겨가는 추세입니다. 6월 말 기준 자영업자의 은행권 대출은 1년 전보다 12.9% 증가한 반면, 비은행권 대출은 22.2% 늘어났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최근 국회가 미소금융, 햇살론 등 정부의 정책 서민금융상품에 대한 예산을 전액 삭감하면서 서민대출 환경은 더욱 악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피해자에겐 심각한 금전사기…가해자 처벌은 솜방망이

차용 사기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유로 법원의 처벌이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1년 이하의 징역형이 선고되는 경우가 허다하고, 그마저도 집행유예로 실형을 살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계속적인 금전거래 중간에 사업상 문제가 생겨 이를 고지하지 않고 금전거래를 계속한 경우도 사기죄에 해당하지만, 법원은 이 경우는 약한 기망행위라며 형량을 감경해주고 있다"며 "피해자에게 회복하기 힘든 피해를 야기하는 금전사기인데도 너무 관대하게 처벌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기망행위와 상관없이 악질채무자는 채무불이행죄를 신설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다만 채무불이행죄는 처벌 만능주의로 변질될 수 있다는 지적이 많아 법조계에서는 사실상 도입이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반면 일각에서는 개인 간의 금전거래를 범죄화하는 것은 국가가 지나치게 사적 계약관계에 개입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단순한 채무 불이행에 불과한 사안에도 피해자의 고소·고발이 남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일반인들이 제도권 금융 시스템을 이용하지 못한 채 사인 간 금전거래 등 사금융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은 부족한 서민 금융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형제나 가족 간 관계를 중요시하는 동양권 국가의 특성상 갑작스럽게 금전을 변통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미 국내 금융시스템은 선진국화해 이런 수요를 받쳐주지 못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부모 빚도 연예인이란 이유로…도 넘은 마녀사냥 지양해야

빚투 논란이 확산하자 친족에게 범죄 연대책임을 묻는 '연좌제'에 대해서도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부모 죄를 자식과 연결시키는 것은 지나치다"와 "자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형국입니다.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모가 생존해 있으면 자식이 부모의 빚을 갚아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연좌제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헌법 제13조 3항은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해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형법에 적용되는 개념이지만, 민사에서도 부모의 채무불이행을 자식에게 묻는 경우는 없습니다.

다만 자녀가 연대보증을 섰을 경우 상황이 달라집니다. 한 법률 전문가는 "부모가 갚지 않으면 자식에게 책임이 돌아간다"면서도 "지금까지 폭로된 빚투에서 연예인이 부모와 연대보증을 선 사례는 아직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사망해 자식이 재산을 상속받았다면 빚을 갚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재산뿐 아니라 부채도 상속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상속을 포기했거나 일부만 받는 등 경우에 따라 채무변제의 범위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물론 자녀가 상속포기를 한다면 빚을 갚지 않아도 됩니다. 상속을 포기하는 대신 부모의 빚에 대한 모든 법적 책임에서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설령 재산을 상속받아도 자식이 부모의 모든 빚을 떠안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는 상속받은 부모 재산의 한도 내에서만 채무를 갚으면 됩니다.

전문가들은 상당수 빚투 운동은 사건 당사자가 아닌 그들의 가족인 연예인들을 향한 망신주기 식의 폭로라며 법적 책임은 없어도 도의적 책임으로 연예인 자녀가 돈을 갚으라는 식인데, 이런 건 도의적으로 옳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미지로 먹고사는 연예인은 공인(公人) 신분이라 팬들이 이들을 비난하는 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만, 도를 넘어선 힐난은 지양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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