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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의 월드줌人] '난 네팔로 가야 했다. 그들을 돕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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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6-13 14:03:00 수정 : 2015-06-13 15:4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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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25일(현지시간) 네팔에서 발생한 규모 7.8의 강진으로 지금까지 8700여명이 숨지고 2만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호주의 한 40대 여성이 개인 재산을 팔아 모은 돈으로 피해자들에게 음식을 나눠준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감동적인 사연의 주인공은 호주 퀸즐랜드주에 사는 리디 베어링(47)이다. 세 아이를 둔 그는 온라인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중, 네팔 대지진 소식을 듣고 가슴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생각 끝에 개인 재산을 팔아 돈을 마련, 피해자들에게 도움이 되자는 결심을 했다.

베어링이 무작정 네팔 피해자들을 돕자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같은 인간으로서 피해자들을 향한 연민이 느껴진 것일 수도 있지만, 사실 그의 남편은 오래전 백혈병 진단을 받고 병석에 누운 상태였다.

순식간에 가장이 된 베어링은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며, 다행히 남편의 병세가 나아지고 있다는 의료진의 말을 들은 뒤, 자신도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보탬이 되자는 생각을 하던 터였다. 그러던 중, 대지진 발생 소식을 알게 된 베어링은 ‘네팔行’이 자신의 운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가족들의 생계를 위한 최소한의 물품을 남겨두고 개인 물건을 모두 처분한 베어링은 정확한 액수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어느 정도 충분한 돈을 모을 수 있었다. 게다가 베어링의 친구 로렐라 레그로스(47)도 피해자 돕기에 나서겠다고 말하면서, 외로운 타지 생활을 견딜 수 있는 힘까지 생겼다. 레그로스는 이전에 네팔에 다녀온 경험이 3차례 있었다.


지진 발생 6일 후인 5월1일. 레그로스와 네팔에 도착한 베어링은 처참한 광경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거리는 슬픔과 아픔으로 얼룩졌고, 간간이 보이는 복구작업은 대지진 여파를 이겨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베어링은 “나를 네팔로 이끈 건 레그로스의 영향이 컸다”며 “이전에 몇 번 네팔에 다녀온 친구는 내게 ‘같이 가서 사람들을 돕지 않겠냐’고 물어왔다”고 말했다. 그는 “‘왜 내가 안 되겠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베어링은 남편의 백혈병 진단 때문에 우울증으로 얼룩졌던 지난날을 떠올렸다. 그는 “남편은 무려 15개월이나 투병생활을 했다”며 “그때 하루하루는 심각한 감정파탄 상태였다”고 말했다. 우울증에 빠진 베어링의 눈 앞에 펼쳐진 미래는 어둠뿐이었다.


베어링이 네팔에 차린 간이식당은 처음에는 카트만두의 단 1곳이었으나, 입소문이 퍼지면서 점점 늘어나더니 10일 만에 8곳에 자리를 잡았다. 베어링은 쌀과 깨끗한 물뿐만 아니라 감자와 카레가루, 석유와 가스 등 음식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갖추려 노력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식당을 만들 수 있었는지 궁금할 사람이 많을 듯하다. 그러나 베어링의 말에 따르면 단 50달러(약 5만6000원)만으로도 이틀 동안 300명을 먹일 수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베어링이 호주에 있을 당시 얼마나 많은 물건을 팔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매일 450명에 달하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줬어요. 사람들이 각지에서 식당으로 몰려들었죠. 그만큼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뜻이잖아요. 정말 굉장한 날들의 연속이었죠”


한번 네팔을 덮쳤던 대지진은 베어링의 사투를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최초 발생했던 강진에 이어 5월12일 발생한 규모 7.3의 지진은 다시 현지인들을 공포에 떨게 했고, 베어링에게도 두려움을 심어줬다. 다행히 식당이 무너지진 않았으며, 이를 발판삼아 베어링은 두려움을 용기로 승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베어링에게도 한계는 있었다. 넉넉하다고 생각했던 돈이 식당운영으로 모두 떨어져 버린 것이다. 베어링은 식당운영에 필요한 돈이 부족해지자 지난달말 호주로 돌아왔고, 사람들의 도움과 물건 처분으로 얻은 2000달러(약 223만원)를 들고 며칠 후 다시 네팔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마저도 모두 동나면서 베어링은 지난 10일 호주행 비행기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호주에 머무는 베어링은 지금도 네팔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곳에는 자신이 직접 세운 간이식당과 음식을 기다리는 많은 피해자들이 있다. 베어링이 다시금 신발끈을 꽉 조이는 이유다.

“다행히 간이식당은 현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잘 운영되고 있지만, 지금은 하루에 한 끼 정도밖에 제공을 못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특히 네팔로 날아온 티베트 수도승들이 큰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의 도움을 고마워한 베어링은 그러나 아직도 자기가 할 일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우리가 네팔에서 했던 것들은 아무 일도 아니었어요"라며 "제가 아니었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요"라고 말할 뿐이다.

그러면서 베어링은 오히려 네팔인들에게 고마워했다. 자신에게 희망을 심어줬다는 것이다.

“네팔은 저의 우울증을 치료하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그곳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제 영혼에 숨을 불어넣어 줬어요. 네팔은 저에게 인생의 짐을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을 줬죠”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사진=영국 데일리메일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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