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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스토리] 삼시세끼 스스로 원초적 기쁨에 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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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4-04 06:00:00 수정 : 2015-04-04 14:5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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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 자급자족 생생체험
거름 만들고… 땔감 구하고… 집 짓고… '땀방울의 힘' 오롯이
“기자 양반 시키려고 아껴놓은 게 있지.”(웃음) 지난 3월17일 낮 12시쯤 서울에서 5시간을 달려 변현단(50·여)씨의 집에 도착했다. 전남 곡성군 통명산 끝자락이었다. 변씨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자급자족의 삶을 체험하기 위해 찾아온 기자를 집 뒤편으로 끌고 갔다. 산비탈을 따라 몇 걸음 옮겼을 때 목재로 둘러싸인 뒷간이 눈에 들어왔다. 변씨는 뒷간 문을 열어젖히더니 “자급자족의 기본 중 기본인 천연 거름을 직접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며 선심쓰듯 말했다. “당장 먹을 것만 해결한다고 자급자족이 아니에요. 우리가 먹는 건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데? 결국 자연이든, 우리 몸이든 에너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게 자급자족의 기본 원칙인 거죠.” 천연 거름의 재료는 ‘아껴놓은’ 인분과 왕겨 더미. 왕겨 덕분인지 인분 냄새는 생각만큼 고약하지 않았다. 변씨는 인분을 품은 왕겨 더미에 불을 놨다. 불이 붙은 왕겨 더미가 새빨갛게 변하더니 금세 재로 변했다. 인분을 자연발효시켜 거름으로 만드는 데 1∼2년 걸리는데, 이렇게 훈탄(薰炭·짚이나 낙엽, 잡초 따위를 태운 재를 인분과 섞어 만든 거름)을 만들면 24시간 뒤면 거름이 완성된다고 했다.


클릭하면 큰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급자족 생활의 필수재인 거름과 불 다루기

불은 거름을 만드는 데만 쓰이진 않았다. 자급자족의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게 불이었다. 불을 다루면서 가장 많은 핀잔을 들었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 난방을 위해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 한다. 집짓기에 필요한 풀을 만들 때도 불이 필요했다. 근대화 이전 농촌 사회에서 불씨 보관이 집안의 중대사였듯이 오랜 시간 적정하게 유지되는 불을 만드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오후 1시30분∼2시=땔감 구하기
오후 2시쯤 변씨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김춘자(38·여)씨가 기자를 불러 앞마당에 설치된 간이 아궁이 앞에 앉혔다. 김씨는 “입체적으로, 입체적으로”라고 연거푸 말하면서 아궁이 안에 두툼한 크기의 나무와 바짝 마른 잔가지를 섞어 쌓았다. 땔감 사이로 공기가 잘 통하도록 해야 했다. 기자는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자리를 넘겨받았다가 30분 넘게 땔감과 씨름하며 매운 연기를 들이마셔야 했다.

폐휴지에 불을 붙여 아궁이 안에 넣고 꼬챙이로 땔감을 이리저리 휘젓고 얇고 너른 나무판으로 부채질도 해봤지만, 잔가지들에만 불이 붙을 뿐 두툼한 나무에는 옮겨붙지 않았다. 

오후 1시∼1시30분=천연거름 만들기
다른 일을 하다 아궁이에 들른 김씨가 쩔쩔매는 기자를 한동안 지켜보다 “입체적으로 하시라니깐…” 하고 말 한마디 던지더니 기자가 쥔 꼬챙이를 뺏었다. 흐트러진 땔감을 다시 쌓아올린 뒤 불을 넣고 타다만 잔가지들을 조금씩 움직여주니 불이 금방 크게 살아났다. 날이 어두워져갈 때쯤 집안 난방을 위해 집 왼편에 설치된 아궁이 앞에 앉았지만, ‘입체적으로’란 말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끝내 실패했다.

3월17일 전남 곡성군 석곡면 방송리 자급자족 마을에서 24시간 생활체험에 나선 사회부 김승환 기자가 산에서 땔감 나무를 나르고 있다.
곡성=남정탁 기자
◆직접 지은 집에서 살아야 제대로 된 자급자족


변씨는 지난해 10월부터 동료와 함께 집을 새로 짓기 시작했다. 나무 뼈대 세우는 일만 외부 전문가 손길을 빌리고 설계를 하고, 터를 닦고 구들을 까는 등 일을 모두 손수 했다.

집짓기를 주도한 류철웅(52)씨는 “황토로 지은 집으로 완전히 생태적 방식을 고집했다”며 “자기가 사는 집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지어야 제대로 된 자급자족 아니겠냐”고 말했다.

오후 2시∼2시30분=한옥 미장용 풀 쑤기
봄볕이 한창 들기 시작한 이날 오후 3시쯤부터 모두 집 외벽에 황토를 바르는 미장일에 돌입했다. ‘집짓기 왕초보’인 기자는 고운 황토를 섞은 황토 풀로 집 오른편 벽을 칠하는 작업을 맡았다. 처음에는 무작정 왼쪽 상단 귀퉁이부터 황토 풀을 발라나갔다. 20분쯤 지났을 때 변씨가 다가와 “붓질은 한 방향으로만 해야지” 하고 기자가 이미 칠한 부분에 다시 붓질을 하기 시작했다. 말랐을 때 최대한 얼룩이 생기거나 갈라지지 않게 여러 차례 덧칠을 해야 하는 만큼, 정성이 이만저만 드는 게 아니었다.

일이 손에 점차 붙자 함께 일하던 류씨가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당골막이 일을 해봐야 ‘진짜 한옥 미장을 했다’ 할 수 있다”고 놀리듯 말했다.

당골막이는 서까래 아래에 흙으로 덮인 부분을 가리키는 말이다. 둥근 서까래 테두리를 황토로 꼼꼼하게 막아줘야 실내 열이 빠져나가지 않고 외부에서 벌레가 들지 않기 때문에 “한옥 미장에서 가장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작업”이란 것이 류씨의 설명이었다.

오후 3시∼오후 5시30분=한옥 미장 작업
문정환(44)씨의 도움을 받아 당골막이 작업을 하다 보니 날은 어느새 어두워져 저녁시간이 됐다. 작업대에서 내려와서야 뒷목이 뻣뻣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땀에 전 모습으로 둘러앉은 저녁상 위에는 게걸무 동치미, 돼지감자 볶음 등 토종 작물로 만든 반찬이 가득이었다. 완성을 앞둔 새 집, 봄 농사 준비 등을 화제 삼아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니 밥그릇이 금세 비었다. “내일은 봄비가 올 것 같다”는 변씨의 말을 듣고 낮에 미장을 했던 쪽 방에 누워 눈을 감았다. 노동의 보람과 고단함이 교차하는 순간, 구들장을 타고 올라온 온기가 기자를 깊은 잠으로 이끌었다.

곡성=김승환 기자 hw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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