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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공식·도형에 ‘멘붕’… “수학만 아니면 살 것 같아요”

입력 : 2014-04-07 06:00:00 수정 : 2014-04-07 13:3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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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무덤’ 중학교 수업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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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얘들아, 시계 봐. 아직 15분밖에 안 지났다. 시계 보면서 집중하는 시간도 늘리라고 했지.”

3일 서울 A중학교의 3학년 수학 시간. 수업 초반 교사의 말에 귀 기울이며 문제를 열심히 들여다보는가 싶던 학생들의 자세가 순식간에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이 반은 100점 만점에 10∼20점을 받는 수학 부진학생 6명을 따로 모아놓은 수준별 학급 ‘C반’이다.

이날 학생들의 과제는 ‘acbcadbd를 (ab)(cd)꼴로 묶는’ 인수분해 문제. 웬만해선 시험에도 안 나오는 ‘완전 기초’ 문제인데도 학생들은 몸을 비비 꼬며 지루함을 참지 못했다.

“기억이 안 나면 지난번에 어떻게 했는지 봐. 볼래? 이거 세 번째 푸는 거야.”

“네? 세 번째라고요. 말도 안 돼. 오늘 처음 본 것 같은데…”

박미영(여·가명) 교사는 “그나마 수준별 수업으로 교사가 한명 한명 붙들고 가르쳐서 이 정도라도 따라오지, 통합 수업일 때는 이 학생들을 아예 제쳐 놓고 가르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중간 성적대 학생 20여명이 모여 있는 B반 교실로 가보니 한 남학생이 뒤쪽에서 벌을 서고 있었다.

“수학 진짜 너무 싫어요. 수업 시작하고 엎드렸는데 뒤로 나가라잖아요.”

뾰로통하게 말하는 학생에게 왜 그렇게 수학이 싫은지 물었다.

“초등학교 때까지 좋아했는데 중학교 올라 와 미술에 관심이 생기면서 마음이 멀어졌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너 왜 이 문제 못 푸느냐. 못 풀면서도 왜 (자신을) 대견스러워하냐’ 그러잖아요. 자존심 상하게….”

또 다른 남학생은 1학년 2학기 기말고사의 충격이 1년 넘게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때 39점을 받았어요. 1학년 첫 기말고사에서 그런 점수를 받으니 완전히 자신감을 잃었어요”라며 “수학만 아니면 살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세계일보 설문조사에서 보듯, 적잖은 학생이 초등학교 졸업 이후 중학교 수학의 높은 벽 앞에 좌절한다. 왜 그럴까.

무엇보다 학생들은 초등학교에 없었던 기호와 문자를 동반한 ‘추상화된 수학’을 접하면서 당황하게 된다. 예컨대 초등학교 때는 ‘23’이나 ‘2□=5’ 정도를 알면 됐지만, 중학교에서는 미지수가 등장하면서 2x3x를 만나게 된다.

도형도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때는 직사각형 운동장 그림을 보여주고 넓이를 구하라고 물었지만, 중학교에서는 ‘삼각형 A와 B가 닮은꼴임을 증명하라’고 묻는다. 근의 공식, 피타고라스의 정리 등 낯선 이론이 우후죽순 등장하는 것도 중학교부터다. 수학이 생활과 유리돼 머나먼 외계로 흘러가는 순간이다. 최수일 수학교육연구소장은 “수학에서 추상화는 당연히 거쳐야 할 단계이지만 우리나라 중학 수학에서는 너무 맥락 없이 불친절하게 시작되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고등학교 1학년인 박미현(가명)양도 중학교 1학년 초에 수학포기자(수포자)가 됐다.

“문자 섞인 식을 주고 간단히 하라고 하는데 왜 간단히 해야 하는지, 2x5y랑 2x·5y랑 뭐가 어떻게 다른지 하나도 모르겠더라고요.”

박양은 수포자를 넘어 단순 계산만 나와도 머리가 굳는 ‘수학 공포증(math phobia)’ 수준이다. 백화점에서 ‘70% 세일’이라고 적힌 안내를 봐도 ‘싸구나’란 느낌만 있지, 물건값을 계산할 줄 모른다. 학습장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중학교 때 좋아한 일본어 시험에서는 95점도 받았다.

중학교가 ‘수학의 무덤’이 된 데는 ‘지독한’ 사춘기 시기와 겹치기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부산 여명중 김영화 수석교사(수학)는 “‘공부를 왜 해야 하는가’도 사춘기의 중요한 고민에 속하는데 우리 수학교육은 이를 해결해주기보다 문제풀이를 강요한다”며 “한창 예민한 시기의 학생들은 (초등학교 때 상상도 못한) 40점, 50점을 받으면 쉽게 수학을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그렇게 한번 ‘수학 궤도’를 이탈하면 1∼2년 뒤 마음을 다잡더라도 따라가기가 어렵다. 공백 기간 머릿속에서 지워진 학습 내용까지 감안하면 또래보다 적어도 3∼4년간의 학습 격차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한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은 “국어나 영어는 앉아서 10시간이든 12시간이든 붙잡고 있으면 성적이 오르는데 수학은 안 그런다”며 “수학이 논리적 사고를 키워준다고 하는데 나로서는 진도 따라가는 데만도 급급하다”고 토로했다.

고등학교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 악화된다. 학습량이 많아진 데다 잘하고 못하는 학생의 격차가 커진다. 수학에 자신 있는 상위권 학생 상당수도 고배점짜리 한두 문제에 입시 당락이 결정되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수학’ 하면 바로 떠오르는 생각을 적어보라는 주문에 중고생의 부정적 응답이 초등학생보다 갑절 많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49를 7로 나누라고 하면 7×1=7, 7×2=14… 이렇게 읽어나가야 하는 애들이 많아요. 기본적인 사칙연산도 제대로 안 된다는 거죠. 과락(科落)도 없고, 그렇다고 뒤처지는 애들을 일일이 지도할 여건도 안 되니 구구단도 모르고 졸업하는 학생이 나오는 거죠. 못 믿겠다고요? 그게 바로 우리 수학교육의 현실입니다.” 수포자들의 수학 이해도에 대한 한 중학교 수학교사의 한숨 섞인 말이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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