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컵 한·일전 현수막 문제와 관련) 만약 일본에서 이런 행위가 있었다면 다른 서포터스가 멈추게 하지 않았을까. 이런 것은 국가의 민도(民度)가 의문시되는 것이다.”(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문부과학상)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를 거론한 강창희 국회의장에게)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이 곱다.”(고노이케 요시타다·鴻池祥肇 참의원 의원)
아베 신조 총리 집권 후 일본의 우경화 행보가 노골화하는 가운데 최근 일본 정치인의 우경·망언(妄言) 릴레이에서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과거사 문제를 회피하고 한국인의 민족감정을 자극하는 우익 정치인이 대부분 한·일 친선을 위해 조직된 일·한의원연맹이나 일·한협력위원회 소속이라는 점이다. 겉으로는 친한파나 지한파로 여겨지는 일본 정치인 상당수가 우리로서는 반한파, 혐한파인 셈이다.
◆일본 우익 집합소인 한·일 친선단체
일·한의원연맹 소속 의원 중 상당수는 일본의 대표적인 우익의원 모임인 ‘다 함께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를 참배하는 국회의원모임’(이하 야스쿠니의원모임), 신도(神道)정치연맹, 일본회의국회의원간담회 등에서 활동하면서 야스쿠니신사 참배, 일본군위안부의 강제동원 부정, 재일외국인 참정권 부여 반대 등 일본 우경화의 선봉에 서고 있다. 아베 총리, 시모무라 문부과학상도 모두 일·한의원연맹과 야스쿠니의원모임에 적을 두고 있다.
일·한의원연맹 고문인 아베 총리는 일본 우익의 거두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의 외손자로 집권 후 평화헌법 개정, 집단적 자위권 추구, 고노담화 수정 시사 등 일본의 우경화를 주도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9월 자민당 총재후보 공동기자회견에서 “(제1차) 총리 재임 중 (야스쿠니신사에 총리로서) 참배하지 못한 것은 통한(痛恨)의 극(極)이었다”고 말했다. 총리·국무위원(각료)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일본 내에서도 헌법의 정교(政敎)분리 원칙에 위배된다는 논란을 일으킴에도 향후 총리 자격으로 참배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기본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일·한의원연맹 회장인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郞) 의원도 야스쿠니의원모임 소속이다. 누카가 회장은 지난 1월 방한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만나기도 했다.
![]() |
야스쿠니 집단 참배하는 日의원들 나카소네 히로후미 참의원 의원(왼쪽 세번째)을 비롯한 우익 성향 일본 국회의원 168명이 지난 4월23일 도쿄 야스쿠니신사 춘계 예대제를 맞아 집단 참배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1969년 한·일 국회의원, 재계, 학계, 문화인, 여성계를 중심으로 조직된 일·한협력위원회도 상황은 비슷하다. 야스히로 (中曾根康弘) 전 총리의 대행인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는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망언 제조기’다. 최근에는 ‘나치식 개헌’ 발언으로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반발을 샀다. 그는 이전에도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해 “객관적인 사실에 완전히 기초하지 않고 있다”고 부정했다. 아소 부총리는 2월25일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특사로 참석한 뒤 박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도 한·일 관계를 미국의 남북전쟁에 비유하는 듯한 궤변을 늘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일 강창희 국회의장 면전에서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말한 고노이케 참의원 의원이 아소 부총리의 측근이다·
◆“이 정도일 줄은… 대책이 없다”
한국 측은 이런 상황을 거의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뿐더러 일본 측 구성은 상호주의에 따라 일임한 것이기 때문에 뾰족한 대응책이 없다. 한·일의원연맹 측은 “전혀 그런 내용을 몰랐다”고 밝혔다. 한·일협력위원회 관계자는 고노이케 의원의 방한 과정에 대해 “일·한협력위원회가 주관해 일본 측이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는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전체적으로 일본 사회가 보수화하면서 일본 정치인의 우경화는 불가피하다면서도 한국의 지일파 의원의 활동 강화를 주문하고 있다. 세종연구소 진창수 일본연구센터장은 “한·일 친선단체가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은 우리 의원 중에 일본을 아는 의원이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라며 “정계의 파이프뿐만 문화계·학계 등으로 교류 파이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국립외교원 조양현 교수는 “1965년 한·일 수교 이후 일·한의원연맹이 보수적인 자민당 의원 중심으로 구성된 데다 최근 일본 사회 전체가 보수화하는 경향도 반영된 것”이라며 “그럼에도 사명감을 가지고 한·일 우호관계를 위해 노력하는 의원이 나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일본 지역 공관장은 “밉다고 안 만날 수도, 무시할 수도 없는 것이 일본이라는 존재”라며 “양국 정부 관계가 냉랭한 상황일수록 의원들이 직접 뛰는 의원외교가 더욱 중요하다” 고 강조했다.
김청중·박세준·김채연 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