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먹잇감’ 한국 IT社 삼성전자와 애플은 치열한 특허전쟁을 벌이고 있다. 자신의 기술을 지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특허괴물’(특허전문기업·NPEs)이 겨냥한 목적은 판이하다. 기업의 허점을 노려 거액의 특허료를 뜯어내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일종의 ‘흡혈전략’이다.
미국 소송제도의 특성상 패소한 기업은 엄청난 비용과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하는 탓에 기업들은 적당히 타협할 수밖에 없다. 특허괴물은 이 점을 노리고 하이에나처럼 달려든다.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특허제도가 기업을 할퀴는 수단으로 변질된 것이다.

애플이 두려워하는 것은 삼성보다 특허괴물이다. 애플은 2007년부터 지난 6월 말까지 152건의 소송을 당해 특허괴물 소송에 휘말린 기업 1위를 달리고 있다.
특허괴물에 소송당한 기업들은 대부분 포기하고 서둘러 합의한다. 한국지식재산보호협회 분석에 따르면 6개월 내 합의한 기업이 28%, 1년 내 43%, 2년 내 74%다. 장기화하거나 판결까지 진행되는 건은 14%를 밑돈다. 이는 특허괴물이 핵심 특허를 대거 확보해 재판해도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특허괴물은 인텔렉추얼벤처스(IV)다. 이 기업은 6월 말 현재 3만건에서 최대 6만건의 특허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 라운드록리서치는 3652건, 록스타컨소시엄 3428건, 인터디지털은 2955건의 특허를 갖고 있다. 패소하면 거액의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까닭에 기업들은 재판을 포기한다. 평균 배상액은 2004∼2009년 1290만달러에 달했다.
미국 보스턴대학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기업들은 특허괴물 소송 대응에 34조원을 쏟아부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허괴물은 이처럼 기업들이 어렵게 벌어들인 이익을 손쉽게 가로채고 있다. IV는 페이퍼컴퍼니인 자회사가 1200개를 넘고 50억달러 규모의 특허펀드를 조성해 하이테크 기술을 중심으로 특허를 대량 사들이고 있다. 2010년 11월 하이닉스와 팬택을 대상으로 특허 침해소송을 냈고, 삼성전자, LG전자, 팬택과 특허계약을 맺고 거액의 로열티를 챙기고 있다.

특허괴물의 타깃은 시장 규모가 커 로열티 수익이 많고 특허 침해 가능성이 큰 정보기술(IT) 분야에 집중되고 있다. 이 때문에 글로벌 IT 기업들은 특허 방어를 위해 특허를 직접 매입하고 있다. 애플, MS, 구글 등 ‘빅3’는 지난해와 올해 특허 매입에 20조원 이상을 쓴 것으로 추정된다.
애플은 아예 파산한 캐나다 통신기기 제조사 노텔의 특허 6000여건을 지난해 45억달러에 인수해 특허괴물 록스타비드코를 설립했다. 여기에는 MS, 소니, EMC, 에릭슨, RIM도 참여했다. 최대주주는 지분 58%를 보유한 애플이다. 거대 IT 기업들마저 특허괴물의 비즈니스가 ‘돈 되는 장사’라는 사실에 눈을 뜨면서 점점 특허괴물화돼 가고 있다.
심각한 문제는 한국 기업이 먹잇감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록스타비드코는 최근 삼성전자, LG전자, 팬택에 와이파이, 동영상 재생 등 비표준특허를 침해했다며 수조원의 로열티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상하는 한국 기업을 미국, 일본, 캐나다 기업이 특허괴물을 앞세워 연합전선을 펴고 압박하는 형국이다.
특허괴물의 공격은 한국 기업에 집중되고 있다. 특허청에 따르면 특허괴물의 국내기업 상대 소송은 2004년 6건에서 2011년 94건으로 급증했다. 올해도 5월까지 42건이 제기됐다. 특히 삼성전자와 LG전자 상대 소송은 2007년 36건에서 2011년 80건으로 늘었다. 현대차도 모두 14건의 소송을 당했다. 최근 자동차에 수많은 IT 기술이 적용되는 추세로, 현대차의 미국 시장 점유율이 급증하면서 공격 대상이 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긴장하는 국내 휴대전화 3사
특허괴물의 공격은 앞으로 삼성전자, LG전자, 팬택 등 국내 휴대전화 3사에 더욱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휴대전화 왕국 노키아가 경영난 끝에 현금 확보를 위해 이동통신 기술 관련 특허 500여개를 2200만달러에 특허괴물 ‘브링고’에 매각했기 때문이다. 이 특허에는 한국 특허청에 등록된 3G WCDMA 표준특허와 4G LTE 기술이 포함됐다. 브링고는 이를 앞세워 국내 기업에 수조원의 로열티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노키아는 지난해에도 캐나다 특허괴물 모사이드테크놀러지에 무선시스템 운영에 필요한 핵심 특허 2000개를 매각했다. 노키아는 특허괴물과 특허 소송에 따른 수익을 배분하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알려져 한국 휴대전화 제조 3사를 상대로 한 파상공세가 예상된다.
미국 지식재산권 컨설팅 전문기관인 테크IPm에 따르면 올해 2분기까지 미국 특허청에 출원된 LTE 핵심 표준특허 187건 중 LG전자가 보유한 특허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노키아도 LTE 특허 2위에 올라 있고, 노키아가 보유한 핵심특허는 아직도 3만개에 달하는데 특허괴물에 추가 매각을 검토 중이다.
최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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