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데까지 간 통합진보… 재창당 혁신작업 잘될까 경선 부정과 폭력사태로 얼룩진 통합진보당의 쇄신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16일 첫 회의를 가진 혁신비상대책위원회의 강기갑 위원장은 “뼈아픈 고통을 감내해서라도 국민 앞에 진보정치의 새로운 발판을 마련하겠다”고 ‘재창당’ 의지를 밝혔다. 진보진영의 강도 높은 쇄신 압박 속에 통합진보당 내부에서도 ‘봉합이 아닌 재창당 수준의 혁신만이 살 길이다’는 목소리가 크다. 시급성을 감안해서 비대위는 당장 비례대표 후보 총사퇴 문제와 폭력사태 진상조사위, 경선 진상규명특위 구성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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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총 간 강기갑 “함께 하자” 통합진보당 강기갑 혁신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이 16일 오전 서울 정동 민주노총을 방문해 비대위 참여를 호소하며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이제원 기자 |
통합진보당 혁신의 키워드로 등장한 화두는 ‘진보정치세력의 재구성’과 ‘진보시즌 2’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현재 통합진보당까지 진보정당이 걸어온 길이 ‘진보시즌1’이었다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진보정치세력을 재구성해 ‘진보시즌2’를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내 최대 세력인 민주노총도 기존의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당명 개정을 포함해 창당 수준의 쇄신을 압박하고 있다. 강 비대위원장의 요청에도 비대위 참여 확답을 미룬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은 “저 당이 과연 가망이 있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든다. 우리가 들어가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 수도 없다”고 말했다. 애초 운동권 정당을 벗어나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이었던 통합진보당 목표를 지키는 방향으로 강도 높은 혁신을 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진보시즌2 토론에 불을 댕긴 건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장과 통합진보당 서기호 사법개혁특위 위원장이다. 노무현 정부 국민경제비서관 등을 맡았던 정 원장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80년대 시작된 운동이 한 막을 내렸다. 진보시즌2를 시작해야 한다”며 통합진보당 입당을 알렸다. 비상대책위원회 외부위원으로 위촉됐으나 고사했다. 강 비대위원장은 “정 원장은 ‘다른 역할’을 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진보시즌2에서) 역할을 크게 하겠다’고 했고 우리 생각에도 의미가 있고 큰 힘이 되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권파인 이정희 전 공동대표가 영입했으나 이들과 등지고 당 쇄신에 앞장선 서 위원장도 기존 정파에서 자유로운 입장에서 진보시즌2 논의를 시작했다. 서 위원장은 ‘삶의 현장에 뿌리내리는 대중정당’, ‘민주적인 정당 운영과 성숙한 토론문화’라는 보다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했다. 두 인사는 이날 오후 만나 새로운 진보 정당의 방향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비대위 중심의 통합진보당 혁신 작업은 강고한 진지를 구축하고 있는 당권파의 ‘항전’으로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당장 혁신비대위에 맞서 별도의 당원비대위 구성을 추진 중이다. 당권파인 이상규 당선자는 “우리가 요구한 화합형 비대위가 거부됐기 때문에 혁신비대위에 참여할 수 없다”며 “당권파 당원들을 중심으로 한 당원비대위가 구성되는 것으로 안다. 당원들이 당의 향후 진로를 스스로 정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결국 강기갑 비대위 체제는 당권파와 대결에서 민주노총 등 외부 원군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성공의 열쇠인 셈이다. 이 때문에 “혁신에 동참할지, 아니면 아예 결별할지” 판가름날 17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 결과가 주목된다.
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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