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인 맛과 향기 듬뿍 담겨 있어야 생명력 지속
한류 열풍에 힘입어 지난해 한국 문화산업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서비스 판매수입이 역대 최고치에 달했다. 그러나 한국 국민이 외국 문화산업 서비스 이용에 쓴 돈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했다. 한국은행 국제수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문화·오락서비스의 해외판매 수입은 7억9400만달러(약 8900억원)로, 한은이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80년 이후 가장 많았다. 이는 영화, 라디오, TV 프로그램, 음반 제작 등으로 외국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뜻한다. 해외 공연과 운동경기, 서커스 등 오락 서비스 판매에 따른 배급 수수료와 관계자 보수 등도 포함된다. 한은 관계자는 “한국 대중가요가 아시아는 물론 유럽이나 미국 등 서구권에서도 큰 인기를 얻자 관련 수입이 급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세계일보 2월6일자>
<세계일보 2월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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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상파방송사가 한국·호주 수교 50주년을 기념한 ‘2011 한국·호주 우정의 해’를 맞아 시드니에서 개최한 한류 콘서트를 관람하는 현지 팬들이 국내 가수들 공연에 열광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이 기사에는 한국은행 통계를 활용해 한류 열풍으로 수출이 증가한 반면 수입도 적지 않음을 소개하고 있다. 문화적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산업의 측면에서는 아직 적자라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한류라는 문화적 열풍을 분석함에 있어 한국의 문화를 다른 나라 사람들과 공유한다는 순순한 측면보다는, 이러한 한류를 통해 얼마나 많은 경제적 가치를 얻는가에 초점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의 한국적인 가치와 정서를 담아 세계인과 공유해야 할 한류가, 문화산업이라는 이름아래 상업적인 상품으로 변모해 가고 있음을 비판해 볼 필요가 있다.
◆대중문화는 수지맞는 문화상품
지난해 6월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유럽을 덮친 한류’라는 제목으로 한류의 성공을 알렸다. SM엔터테인먼트의 ‘라이브 월드투어’ 첫 공연은 예매 시작 후 15분 만에 매진되었다. 이 소식은 한국에 크게 보도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한류의 세계화에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 우리의 문화가 세계로 확산되고 공유된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의 한류가 진정한 한국적 가치를 알리는 문화인지에 대해서는 반성이 필요하다.
아도르노·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에서는 대중문화를 문화산업으로 규정한다. 문화와 예술은 인류 정신의 가치를 담아내는 그릇이어야 한다. 그런데 한류는 대중문화자본가의 끝없는 이윤추구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측면이 강하다. 많은 청소년들이 아이돌 스타가 되기를 원하고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이 넘쳐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힘겨운 연습생 시절을 보내며 미래의 K-POP스타를 꿈꾸고 있다.
대형기획사는 이러한 청소년들을 세계에 판매할 수 있는 상품으로 가공하고 포장한다. 세계의 대중이 좋아할 만한, 따라 부르기 쉽고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잘 판매될 수 있는 노래를 타이틀 곡으로 내세운다. 소위 비슷한 멜로디를 반복해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후크송을 반복 재생산한다. 영어 및 일본어, 중국어 가사로도 만들어 세계 음악 차트를 석권하고 현지 공연은 조기 티켓 매진이라는 성과를 이룩해 낸다. 이는 한국과 세계의 언론에 한류의 성공으로 대서특필된다.
◆한국 정서와 문화 담지 않은 한류
소녀시대의 노래 하면 ‘GEE’가 떠오르고, 잘 짜인 군무가 그려진다. 여기에서 한국의 가치를 찾기는 힘들다. 소녀시대의 GEE뿐 아니라, 세계에 진출한 한류의 문화에는 한국적이라고 내세울 만한 가치를 찾기가 힘들다. 자극적인 멜로디, 자극적인 춤, 자극적인 가사 등에서 한국적인 정서를 느끼기는 어렵다. 아이돌 그룹의 한 멤버가 그만두면 다른 새로운 멤버로 즉각 교체된다.
아이돌 그룹은 이윤추구를 최대의 목적으로 설립된 대형 연예기획사에 의해 계획된, 훌륭한 상품이 되는 것이고 아이돌 그룹 구성원의 개성과 고유성은 무시된다. 필자가 좋아했던 핑클과 S.E.S는 사라졌지만, 소녀시대와 원더걸스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결국 현재의 한류는 한국적 문화의 세계화라기보다 대형 연예기획사에 의해 치밀하게 계획된 문화상품의 세계화인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더 강력하게 대중을 끌어들일 수 있는 다른 나라의 문화상품이 등장할 때 곧 대체될 수밖에 없다.
한류에는 한국의 문화적 가치가 담겨 있어야 한다. 영화 서편제나 취화선은 우리의 정서를 담아내면서도 상하이 영화제와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큰 관심을 받았다.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문화의 상품화를 전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문화의 지나친 상품화는 우리의 정신을 무감각하게 만들고 황폐화시킨다. 우리의 소중한 정신적 가치가 담긴 문화를 만들고 이를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 진정한 한류의 방향이 되어야 한다. 한국적 정신, 한국적 멜로디, 한국적 춤, 한국적 맛, 한국적 향기가 듬뿍 담겨 있는 한류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래야 한류는 오랜 생명력을 지닌 문화로서 인류의 문화사에 오랜 기간 자리매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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