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에는 삼성이나 현대 같은 대기업이 잘못되면 나라에 변고라도 생기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
수도권 한 초선 의원은 24일 정치권과 재계 사이에 고조된 긴장감의 연유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한 굴지의 대기업 공단을 지역구에 둔 그는 “치킨, 청소·세탁업, 커피체인점 등 골목 상권까지 위협하는 대기업에 대한 반감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라고도 했다. 재계에 대한 정치권의 압박을 ‘군기잡기’ 차원의 단순한 감정 싸움으로 치부할 문제는 아니라는 얘기다.
대·중소기업 동반 성장을 놓고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한 정치권과 재계 사이 갈등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법인세 감세 철회, 반값 등록금 등 정책 사안마다 충돌하면서 대치 전선이 갈수록 두터워지는 양상이다. 여기에 최근 한진중공업 노사 갈등에서 비롯된 재벌 총수의 국회 청문회 출석 문제까지 겹치면서 전면전으로도 비화할 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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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전경련 허창수 회장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연합뉴스 |
대기업에 대한 정치권의 강한 불만은 한마디로 ‘사회적 책임 의식의 결여’로 압축된다. 현 정부 초기 친기업, 고환율 정책으로 각 대기업마다 천문학적인 영업이익을 쌓아놓았는데도 고용 및 투자 확대 실적은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이라는 게 비판의 요지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도 “이제 대기업은 양극화 해소라고 하는 국가적 과제의 해결 당사자가 돼야 한다”며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대기업이 복지시설에 조그마한 돈을 기부한 것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권의 재계 옥죄기도 야당 못지않다. 한진중공업 사태가 벌어진 부산 영도가 지역구인 한나라당 김형오 의원(전 국회의장)은 이날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역구의 공적인 업무라는 점에서 수십번이나 사주를 만나려고 했지만 대화도, 전화 통화도 안 되는 모욕적인 행위를 당했다”며 “다른 사람한테, 대량해고된 노동자들한테는 오죽했겠느냐는 점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고 일갈했다. 정두언 의원은 전경련이 반값 등록금과 추가감세 철회를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한 데 대해 “전경련에서 무엇이 불만인지 이해가 안 간다”고 비판했다.
김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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