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같아선 조용히 넘어갔으면…”
군, 대피소점검 등 사전대비 만전 북한 도발 위협에도 군 당국이 이르면 20일 연평도 일원에서 대규모 해상사격훈련을 실시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19일 연평도 섬 전체에는 하루 종일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날 연평도에 머물고 있는 주민들은 겉으로 보기에 차분한 일상생활을 이어갔다. 휴일을 맞아 교회를 찾거나 수매 포대에 담은 벼를 경운기에 한가득 싣고 면사무소로 향했다. 하지만 훈련 일정이 임박하자 주민들은 속에 담아둔 불안감을 드러내고 불만을 터뜨리며 신경이 곤두선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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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지켜주소서” 우리 군이 예고한 연평도 해상사격훈련을 앞두고 서해5도 지역에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19일 연평도의 한 교회에서 주민들이 예배를 보며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연평도=송원영 기자 |
오전 11시30분쯤 인천행 여객선을 타기 위해 선착장에 도착한 백순녀(81) 할머니는 “훈련을 한다는 데다 간밤에 보일러까지 터져 섬을 나간다”며 “생각만 하면 무섭고 떨린다”고 말했다.
이춘녀(83) 할머니도 “가슴이 뛰어 밤새 잠을 못 잤다. 있을 수가 없다”며 “무서워서 나간다”고 손사래를 쳤다. 김인성(77) 할아버지는 “보일러와 냉동고를 고치던 중이었는데 일단 포사격이 끝나면 들어올 예정”이라며 “걸핏하면 들락날락하고… 이게 뭣하는 짓인지”라며 진저리를 쳤다.
면사무소에 따르면 연평도에는 주민과 기관 직원 등 27명이 들어왔고 23명이 빠져나갔다. 민간인 체류자가 185명인 셈이다. 순수 주민은 100명으로 돼있는데, 이 중에는 일부 취재진이 주민으로 분류돼 있다.
최두규 연평 파출소장은 “원래 조용한 마을인 데다 사람마저 빠져나가 쓸쓸함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잇단 훈련 연기로 당국에 대한 불신도 높아졌다. 꽃게 판매업체 대표 김모(46)씨는 “연평도 일대는 이 정도면 날씨가 매우 좋은 편이다”며 “매년 하던 것인데 중·러의 압력에 포를 쏠 기회를 놓친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모(50·여)씨는 “쏠 거면 빨리 쏘고 끝냈으면 좋겠다”며 답답해했다.
전날 벼 수매 때문에 연평도에 들어온 이모(58)씨는 “내일까지 수매를 마무리하고 모레쯤 김포로 갈 예정”이라며 “LH아파트에서 2개월간 살 수 있다지만 그때까지 복구나 피해 보상이 이뤄질 것 같으냐. 정부의 말은 아무것도 믿을 수가 없다”고 역정을 냈다.
면사무소 관계자는 “훈련을 하니 마니 하는 혼선이 불안감을 더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군의 훈련이 임박해진 듯 면사무소 관계자들이 대피소별 담당자를 지정하고 대피소 내 난방기구를 점검하는 등 사전 준비작업에 몰두하는 장면도 목격됐다.
전날에는 연평도로 자대배치를 받은 해군과 해병 신병들이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배에서 내리는 모습도 포착됐다. 박승빈(20) 이병은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면 아무 일 없을 것”이라고 강한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연평도=조현일 기자 con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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