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는 시기상조’→‘논의할 때 됐다’ 분위기 바뀌어 ‘1996년 7(합헌)대 2(위헌)에서 2010년 5(합헌)대 4(위헌)로.’
재판관들의 합헌·위헌 의견 변화에서 보듯 사형제를 바라보는 헌법재판소의 시선은 14년의 간극을 통해 ‘사실상 위헌’ 쪽으로 기울었다는 시각이 많다. 사형제 폐지 논란과 관련해 헌재의 결정 취지가 과거 시기상조론에서 ‘이제 논의할 때가 됐다’는 분위기로 바뀐 것이다. 그동안 인권의식이 높아지는 등 사회, 문화적 변화상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헌재 결정은 형식상 ‘합헌’ 태도를 취했지만 내용상 ‘위헌’에 가깝다. 14년 전 결정과도 사뭇 다르다.
사형제의 위헌 여부에 대한 헌재의 판단은 이번이 두 번째로, 헌재는 1996년 11월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당시 헌재는 사형이 생명권의 완전 박탈을 의미하지만 동등한 가치가 있는 다른 생명이나 공공의 이익보호를 위해서는 흉악범에 대한 사형은 불가피하다는 근거를 앞세웠다.
사형이 범죄예방 효과에 기여한다는 이론은 합헌 결정의 중요한 논리가 됐다. 인간 생명을 부정하는 불법적 성격이 있지만 범죄에 대한 응보 효과 등 ‘필요악’ 측면이 있다는 헌재의 설명이었다.
당시 결정문 곳곳에도 사형제도를 언제까지 존치해야 하는지 고민한 흔적이 엿보였다. 헌재는 문화 수준이나 사회 현실에 비춰 사형제를 완전히 무효로 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했을 뿐 사형도 ‘제도 살인’이므로 필요성이 없어지면 위헌으로 봐야 한다는 단서를 뒀다.
하지만 1997년 12월 이후 사형이 단 한 차례도 집행되지 않고 국내외에서 사형 폐지론이 공감대를 형성해가면서 헌재 입장도 달라졌다. 헌재는 이날 결정에서 한 개인의 ‘생명권의 가치’를 더욱 중요하게 봤다. 사형제는 헌법 자체가 긍정하는 형벌의 한 종류라는 점에서 부정할 수는 없지만, 이와 충돌하는 생명권도 높은 이념적 가치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합헌 의견을 낸 송두환 재판관은 보충의견에서 “사형제가 ‘잔혹하고 이상한 형벌’ 또는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거나 해하는 형벌이 되지 않도록 수사와 재판, 형 집행 등 모든 절차를 세심하게 다듬고 정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정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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