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시민, ‘시신 벽’ 쌓아 항의 표시 "양반들은 그만 좀 오고 의사나 더 보내주시오.”
12일(현지시간) 지진이 휩쓸고 간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생존자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생지옥’을 방불케 하고 있다.
그러나 구조작업과 인력.물자 수송은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황이며, 곳곳에서는 약탈까지 벌어지는 등 긴장의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시신으로 벽을 쌓고..” 불만 고조 = 14일 포르토프랭스에서는 구호작업 지연에 불만을 품은 일부 시민이 항의의 뜻으로 시내 몇 곳에 사망자의 시신으로 벽을 쌓아 길을 막는 참혹한 풍경이 발견됐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사진기자 사울 슈워츠는 “시민들이 시신으로 길을 막기 시작했다”며 “상황이 점점 악화하고 있고, 사람들은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데 신물을 내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미 CBS방송에 따르면 궁지에 내몰린 시민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흉기를 들고 시내를 돌아다니며 약탈까지 서슴지 않는 상황이지만, 정작 이들을 막아야 할 경찰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자선단체 브라질리언 비바 리우 대변인 발미르 파치니는 “총성 몇 발이 들리는데 어디서 쐈는지는 모르겠다”며 “일부 무너져 내린 슈퍼마켓 몇 군데를 상대로 약탈이 시작됐다”고 전자우편으로 전했다.
구호단체 옥스팜의 세드릭 피러스 대변인은 “밤이 위험하다. 약탈이 만연해 있고 몇몇 상점은 깡그리 털리다시피 했을 정도”라고 밝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먼저 도착한 구호단체 회원들도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옥스팜 관계자인 폴 셜록은 “안전 문제가 이미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며 현장에서 활동하는 회원들은 안전을 우려해 대중교통조차 이용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정부는 ‘실종’..시민은 막대기.망치로 구조활동 = 구조장비와 인력 도착이 늦어지더라도 생존자 구조를 늦출 수 없는 시민들은 맨손으로, 아니면 기껏해야 막대기나 망치 등 단순한 장비를 이용해 파묻힌 생존자를 구해내고 있다.
지진으로 무너진 아파트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장 말레스타(19.여)는 “우리를 보라. 누가 지금 우리를 도와주나? 아무도 없다”며 “물과 식량, 피난처 등 모든 게 필요하지만 아무도 가져다 주지 않는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아이티 정부는 실종되다시피 할 정도로 시민들에게 존재감이 없어진 상태다. 상점을 운영하는 에드네르 밥티스트는 “상황을 정리할 능력을 지닌 사람이 이 나라에 아무도 없다. 국제사회만이 우리를 구조하러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세계 각국과 구호단체들이 인력과 물자를 보냈고, 미국도 군 병력 수천명과 항공모함 칼 빈슨호를 현지에 급파하는 등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지진으로 도로가 심하게 파괴된 터라 신속한 구호활동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레이먼드 조지프 주미 아이티 대사는 12일 CNN방송과 인터뷰에서 “지원이 도착하고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만 도로가 큰 문제”라며 “미 정부에 도로를 치워달라고 요청하고 있고 해병대가 중장비를 수송 중”이라고 말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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