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연습장서 일하며 어깨너머로 스윙동작 익혀
2006년 HSBC서 우즈 꺾고 ‘호랑이 사냥꾼’ 별명 ‘바람의 아들’ ‘야생마’ ‘호랑이 사냥꾼’.
양용은에게 늘 따라다니는 별명이다. ‘바람의 아들’과 ‘야생마’는 고향이 제주도인 탓에 생겨났고, ‘호랑이 사냥꾼’은 2006년 유럽프로골프 투어 HSBC챔피언십에서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를 꺾고 우승하면서 붙여졌다. 아시아인 최초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메이저 대회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순간 양용은은 13㎏에 달하는 워너메이커 우승 트로피의 무게만큼이나 한국골프의 위상과 자신의 가치를 드높였다. 최경주로 대표돼온 한국골프의 ‘지존’을 자신으로 바꾸는 순간이었다.
양용은은 골프장 볼보이로 골프를 시작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1972년 제주에서 태어난 양용은은 고교를 졸업하고 생활비를 벌고자 친구 소개로 제주시의 한 골프연습장에서 아르바이트로 공 줍는 일을 하며 골프와 인연을 맺었다. 또 나이트클럽에서 웨이터를 하며 어렵게 생활을 꾸려갔다. 번듯한 직업을 갖도록 굴착기 운전기술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성화에 건설사에 들어갔지만 사고로 한쪽 무릎을 다쳐 2개월간 병원 신세를 지다 보충역으로 입대했다. 이후 1991년 제대한 뒤 제주시 오라골프장 연습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골프장을 찾은 프로선수들의 스윙동작을 어깨너머로 익히며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다.
양용은은 조명시설도 없는 연습장에서 영업이 끝난 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전등을 끌어다 놓고 연습했다.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버지는 “골프는 부자들이나 하는 운동이다. 농사나 같이 짓자”며 말렸지만 아들의 뜻을 꺾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1996년 한국프로골프(KPGA) 프로테스트에 합격, 이듬해 상금랭킹 9위에 오르며 신인왕을 차지했으나 상금은 생활비에도 못 미치는 1200만원에 그쳤다. 이 때문에 ‘골프선수로는 가족 부양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둘까도 고민했다. 레슨코치로 일하면 돈을 벌 수 있지만 그러다가 이름없이 사라져 버린 많은 유망주를 봤기에 양용은은 골프레슨을 하지 않고 연습과 대회에만 참가하는 고행의 길을 택했다.
양용은에게 드디어 봄날이 찾아왔다. 양용은은 2002년 SBS최강전에서 우승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더 큰 무대에서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2003년 일본프로골프 큐(Q)스쿨에 수석합격한 양용은은 2004년 2승 등 통산 4승을 거두며 일본에서도 승승장구했다. 이를 바탕으로 세계의 문을 두드렸고 2006년 11월 HSBC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 화려한 조명을 받았다. 당시 우즈의 7연승을 저지했다는 의미에서 ‘호랑이 사냥꾼’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2007년 PGA 투어 9개 대회에 출전했지만 마스터스 공동 30위가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당시 1년간 PGA 투어에서 모은 상금은 5만3000달러에 불과했다. 잇따른 부진으로 HSBC 대회 우승도 어쩌다 한번 찾아온 행운으로 치부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포기란 없었다. 양용은은 2007년 ‘2전3기’ 끝에 PGA Q스쿨을 통과했지만 성적 부진으로 2008년 예선으로 밀려난 끝에 2009년 다시 출전자격을 획득했다. Q스쿨 성적이 좋지 않아 조건부 대기선수로 있다가 출전 기회를 얻은 양용은은 지난 3월 혼다클래식을 제패, 28개월 만에 다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후 뷰익오픈 5위, 캐나다오픈에서 8위를 차지하면서 끊임없이 정상에 도전하다 이번에 또다시 우즈를 꺾으면서 운이 아니라 실력으로 정상에 올랐음을 전 세계에 알렸다.
한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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