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원장이던 신 대법관과 당시 허만 형사수석부장이 작년 6월19일부터 7월11일까지 8건의 초기 촛불집회 사건을 기존의 전산배당 방식이 아닌 한 명의 부장판사에게 몰아준 것.
신 대법관은 사회적 이목이 쏠린 중요 사건을 경험이 풍부한 판사에게 맡긴 것은 적절한 배당권 행사라고 생각했지만 배당을 받지 못한 형사단독 평판사들은 민감한 시국 사건을 특정 판사에게 몰아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판사들은 7월14일 모임을 갖고 신 대법관에게 이 같은 의견을 전했고 신 대법관은 다음 날 `양형토론회'라는 이름으로 판사들을 불러모은 뒤 촛불집회 사건을 무작위 배당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당시 박재영 형사7단독 판사가 10월9일 야간집회를 금지하는 집시법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고 피고인을 보석으로 풀어주자 다른 판사들도 헌법재판소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 지켜보자며 잇따라 재판을 연기했다.
그러자 신 대법관은 단독 판사들에게 전화를 걸거나 수차례 이메일을 보내 재판에 영향을 끼치려 했다는 의혹을 샀다.
그는 10월13일 한 단독 판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시국이 어수선할 수 있으니 보석을 신중히 결정하라"고 했고 10월14일부터 11월24일까지 판사들에게 수차례 이메일을 보내 "통상의 방법으로 재판을 진행하라"고 당부했다.
헌재 판단을 기다리겠다는 판사들에게 현행법에 따라 유죄 선고를 내리라는 지시나 마찬가지의 뜻을 전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그 뿐만 아니라 골고루 사건을 맡기겠다던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7월15일 이후 접수된 촛불 사건 96건 중 61건만 무작위로 배당되고 35건은 뚜렷한 이유 없이 일부 재판부가 배제된 채 배당됐으며 이후 대법원의 자체 진상조사단은 이를 두고 "사법행정권 남용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올해 2월 정기인사 때 박 판사 등 당시 형사단독 판사 3명이 한꺼번에 법복을 벗었으나, 신 원자은 대법관으로 영전했다.
이후 판사들 사이에 은밀히 돌던 소문은 법원 담 밖까지 퍼졌고 결국은 언론 보도로 이어졌다.
지난 3월5일에는 급기야 신 대법관이 단독 판사들에게 보낸 압력성 이메일이 공개되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대법원은 바로 다음날 김용담 법원행정처장 등으로 구성된 진상조사단을 꾸렸다.
진상조사단은 신 대법관이 재판 내용에 관여했으며 배당 또한 예규를 벗어난 사법행정권의 남용으로 볼 소지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고 신 대법관은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에 회부됐다.
윤리위는 지난 8일 신 대법관의 행위가 사법행정권 행사의 일환으로 이뤄졌으며 모호한 기준의 배당 또한 직무상 의무 위반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경고 또는 주의' 조치를 대법원장에게 권고했다.
이에 일선 판사들은 11일부터 법원 내부망에 윤리위의 미온적인 결정을 비판하고 신 대법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글을 잇따라 올리기 시작했다.
이 대법원장은 12일 신 대법관을 제외한 11명의 대법관들에게 이번 사태에 대한 의견을 들은 뒤 이날 신 대법관에 대해 `엄중경고, 유감표명'을 하기에 이르렀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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