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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매컬리스 아일랜드 대통령이 28일 오후(현지시간) 더블린의 대통령 관저에서 세계일보와 창간 20주년 기념 인터뷰를 갖고 지구촌 분쟁과 글로벌 경제위기, 여성 지도자의 리더십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피가 피를 부르는’ 유혈 분쟁의 상징인 북아일랜드 출신의 매컬리스 대통령은 28일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는 1920년대 분단됐지만 우리는 여전히 가족이고 이웃이며, 동일한 아일랜드인”이라면서 “이웃을 해치는 폭력적인 분쟁에 지친 사람들의 본성이야말로 결국 분쟁을 푸는 실마리”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치적 소수파’인 북아일랜드 출신의 첫 아일랜드 대통령이다. 1997년부터 10여년간 아일랜드를 이끌고 있는 매컬리스 대통령은 ‘켈트족 호랑이(Celtic Tiger)’로 평가받던 아일랜드 고성장 시대의 비결이나, 작금의 경제위기 해법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정부와 경제계, 노조, 농수산업자 등이 ‘사회적 연대’를 이뤄내는 것이다. 그는 “우리의 기본 정책은 함께 일한다는 것”이라면서 “현재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우리가 20여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사회 각 주체들이 모여 사회연대협약에 합의하기 위해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세계적인 여성 지도자로서 남성과 여성의 ‘연대’에 대한 그의 관심은 깊다. 그는 “새가 한 날개로 날 수 없듯이 세상은 남자와 여자라는 두 개의 날개로 날아야 한다”면서 “이번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서도 (두 날개로) 비상하는 경험과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매컬리스 대통령과의 인터뷰는 이날 오후 3시(현지시각) 대통령 관저의 접견실에서 50여분간 이뤄졌다.대통령 관저는 유럽에서 가장 큰 도심 공원 피닉스 파크 안에 자리잡고 있다. 그는 토요일마다 국민들에 관저를 무료 개방하고 있다. 주중에도 방문객의 발길이 잦은데, 인터뷰가 이뤄지는 시간에도 옆방에서는 10여명이 벽에 걸려 있는 그림들을 감상하고 있었다. 대통령과 국민 사이가 무척 가깝게 느껴졌다.
-2004년 재임에 도전했을 때는 경쟁자가 없어 무투표 당선됐는데, 인기의 비결이 있습니까.
“나도 그 이유를 분석해보고 싶네요.(웃음) 11년 전 처음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부터 나의 모토는 사회 각계각층의 가교 역할을 맡자는 것이었습니다. 아일랜드는 사회 유대가 강한 편이지만 두 가지 분열이 있어요. 하나는 오랜 분쟁의 역사를 이어온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와의 분열이고, 다른 하나는 신·구 세대 간 분열입니다. 구세대의 경우 젊은 세대에 비해 교육 등 각종 혜택을 받지 못해 이민을 많이 갔습니다. 이런 사회 구성원 간 틈을 메우는 데 주력해왔고, 이런 점이 재임에 성공한 배경이 된 것 같습니다.”
-대통령 관저를 개방한 것이 국민과 소통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까.
“물론입니다. 국민들이 관저에서 환영받는 점을 알리기 위해, 또 관저가 바로 국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개방했습니다. 관저는 아일랜드 국민에게 상징적인 건물이기도 합니다. 1750년대에 건축됐는데 영국이 아일랜드를 합병하기 전인 1780년대 이를 사들였죠. 관저는 아일랜드 국민에게는 (점령의) 역사를 일깨워주는 장소인 셈이죠.”
-북아일랜드 출신의 첫 아일랜드 대통령으로서 국제분쟁에 대한 남다른 견해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 출신으로서 인생의 상당 기간 분쟁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는 늘 이웃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지금 세대는 아일랜드 역사상 가장 교육을 많이 받은 세대로서 이웃과 다퉈야 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고, 결국 평화협상에 착수해 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앞으로 2, 3세대까지는 아일랜드·북아일랜드 분쟁 해결의 혜택을 보지 못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100%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보다는 90%의 뭔가를 얻는 게 낫다’는 게 우리의 철학입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국제분쟁들은 모두 역사와 배경이 다르지만 대부분 자신들의 이웃이나 가족과 싸우는 겁니다. 남북한 문제든, 중동 문제든 아일랜드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사람들이 이웃과의 되풀이되는 분쟁에 지치게 될 때 비로소 해결의 길이 열린다는 겁니다.”
-지금 아일랜드의 경제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해법은 무엇일까요.
“이번 위기는 감기처럼 국가에서 국가로 전염됐습니다. 각국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점을 가르쳐준 거죠. 이런 시기에 정부는 국민을 한데 모으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의 강점은 20여년 전부터 정부, 노조, 회사 경영진, 농수산업 종사자협회 등이 한 테이블에서 함께 살기 위한 ‘사회연대협약’을 만들어냈다는 겁니다. 이러한 연대의 틀은 수년간 잘 운영돼 왔고, 현재의 위기를 타개하는 데에도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각 부문별로 협상이 진행 중인데 조금씩 양보하면서 합의점을 찾아가길 바라고 있습니다.”
-지금의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새로운 경제정책이나 전략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새로운 금융 질서가 필요하다는 데 모두 공감하고 있습니다. 타로 카드의 나쁜 패가 한꺼번에 나온 것 같은 상황이죠. 기존의 금융체계는 탐욕, 이기주의, 어리석음을 허용했어요. 보다 신뢰할 만한 금융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국제적으로 우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외국 정부와 마찬가지로 아일랜드 역시 은행시스템과 현금 흐름의 안정화에 주력하는 한편 금융기관 간 합병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정책들이 실현된다면 이후 다시 호황기가 오더라도 거품 폭발과 같은 일은 없을 겁니다.”

“아일랜드는 19세기 초 여성에 참정권을 준 선발 국가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이후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1970년대 이전까지는 기업, 정부, 사회 모든 분야에서 여성이 배제됐습니다. 1970년대 (여성 권리를 보장하는) 법적·제도적 체제가 구축되면서 여성의 사회 참여가 늘어났죠. 젊은 여성들이 교육 기회를 많이 얻게 되자 모든 분야에서 참여율이 높아졌습니다. 다만, 정치권은 여성 비율이 13%에 불과하죠. 지난 선거 때는 여성 비율이 2%가량 줄기도 했답니다. 그만큼 아일랜드 정치권 구조가 여성들의 진입을 어렵게 하는 면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개선의 여지가 있습니다. ‘켈틱 타이거’ 얘기 좀 할까요. 당시 여성들의 기여도가 엄청 컸습니다. 15년간 20만명의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나왔는데 그들의 어머니, 할머니 세대는 그런 적이 없었죠. 물론 저는 지금 (동등한 사회의) 초기 단계라고 봅니다. 여전히 ‘유리천장’ 얘기가 나오고 업계에서 활동하는 여성 수는 적습니다. 경제가 침체 국면에 접어들면서 여성들이 실업 위기에 훨씬 많이 노출돼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 관심을 두고 있고 모멘텀을 놓치지 않고 동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여성의 리더십이 동등한 사회를 만드는 데 어떤 기여를 하나요.
“인구의 절반이 여성이고 정책들이 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의사 결정 과정에 이들의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절반의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지 않는다는 건 풍부한 에너지나 자원이 있으면서도 이를 사용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죠. 신선한 새 자원을 거들떠보지 않고 오래된 우물에서만 물을 긷는 꼴입니다. 여성의 새로운 시각, 언어, 경험을 조합해 훨씬 동등한 사회를 만들어나갈 수 있습니다.”
-리더를 꿈꾸는 여성들에게 조언을 하신다면.
“계속 노력하고 포기하지 말라, 스스로를 전적으로 신뢰하라는 겁니다. 그러면 어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전진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이런 것을 하면 안 된다, 남성들에 비해 못한다 등의 말을 들어온 여성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왜 여성은 야망을 품으면 안 되나. (가족의 고정관념에) 반항하라. 이건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균형을 위한 일입니다. 솔직히 역사를 되돌아보면 오직 남성들의 생각, 철학, 행동에 의해 지배됐고 다른 의견, 특히 어머니들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선택은 오직 당신이 하는 겁니다.”
-아일랜드인은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가족 간 유대관계를 중시합니다. 개인주의가 대세인 요즘 시대에 전통적인 가족의 가치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가족의 개념이 많이 변하긴 했지만 여전히 가족의 개념, 기능은 중요합니다. 아이들은 앞으로 자라나 사회에서 번성할 ‘씨앗’입니다. 그들에 관용, 사랑, 이웃에 대한 배려, 자기존경 등을 가르쳐 줄 가정이 필요합니다. 가정이 제 기능을 못하기 때문에 각종 차별과 폭력 등이 횡행합니다. 개인주의가 만연돼 있는 지금과 같은 때일수록 가족의 가치가 평가되고 중시돼야 합니다.”
-2005년 한국을 방문했는데 한국, 한국인에 대한 기억은 어떤 겁니까.
“너무 아름다왔습니다. 나도 한국인들이 가족 지향적이라는 걸 잘 압니다. 젊은 아일랜드인들이 한국에서 영어를 많이 가르치는데 어느 나라나 외국에 나가 있는 아일랜드인들은 외로움을 덜기 위해 그들만의 조직, 공동체를 만듭니다. 그런데 한국에는 그런 게 없더군요. 그럴 필요가 없어서라는 겁니다. 고향과 같은 분위기, 가족적 분위기니 따로 자기들끼리 모임을 가질 필요가 없는 거죠. 처음 제주도에 갔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돌담 벽이 늘어서 있는데 더블린에서 남쪽 해변으로 가면 그런 돌담이 많이 있습니다. 전혀 낯설지가 않은 게 고향에 간 느낌이었어요. 앞으로 한국과 아일랜드 관계가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인터뷰 : 황정미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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