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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불처벌’과 ‘미환수’ 고리 끊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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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8-27 22:47:15 수정 : 2025-08-27 22:47:15
황계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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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 사망에 불법재산 몰수 불발
독립몰수제는 유죄 판결 없이 가능
與, ‘반인권 국가범죄’에 도입 발의
이의 제기·방어권도 꼼꼼히 설계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국정농단, 텔레그램 ‘n번방’ 및 음란물 유통 사이트 ‘소라넷’ 사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 전우원씨의 할아버지(전두환) 비자금 폭로, ‘김옥숙 904억원 메모’로 촉발된 노태우 비자금 의혹,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세월호 실소유주 유병언·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사망….

 

이들 사건은 하나같이 당시 온 나라를 들썩이게 했을 뿐 아니라 범죄수익 환수에도 국민적 관심이 쏠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공소시효가 지났거나 범죄자의 사망 또는 도피로 환수가 무산되는가 하면, 수익금을 찾았으나 피의자를 특정할 수 없어 환수 자체가 불투명했던 적도 있었다. 수익금이 가족 또는 제3자 명의 비자금 등으로 은폐돼 범죄와의 연관성을 입증하기 어려워진 탓에 환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 또한 제기됐었다. 몰수 판결에도 이미 수익금은 빼돌려진 것으로 드러나 여론이 들끓기도 했다.

황계식 논설위원

몰수는 범죄행위에 제공됐거나 범죄로부터 취득한 물건 또는 재산적 이익을 국가가 박탈하는 강제 처분이다. 몰수할 수 없다면 추징을 통해 그 상당액을 금전으로 환수하기도 한다. 우리 형법에서 몰수·추징은 형사재판의 유죄판결에 부가돼 선고된다. 앞서 열거된 사건들처럼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상황에선 몰수 요건이 충족됐더라도 허용되지 않는다. 2023년까지 법원이 선고한 추징금 32조2589억원 중 집행은 0.3%(1049억원)에 그쳤으니 해묵은 난제가 아닐 수 없다. 대책이 시급하다.

 

우리 정부는 2011년부터 독립몰수제 도입을 추진해왔다. 이는 유죄판결이 나지 않더라도 범죄수익임이 확인되면 법원 등 별도절차를 통해 몰수할 수 있는 제도다. 미국과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이 활용하고 있으며,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와 유엔 부패방지협약(CAC), 유럽평의회의 범죄수익몰수협약 등도 도입을 권고한 바 있다.

 

그간 국내에선 독립몰수제는 공론화되지 못했고, 정부의 법제화 의지도 상대적으로 시들했다. 범죄수익 환수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를 때마다 정치권도 관련 법안을 쏟아냈으나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되기 일쑤였다. 유죄판결 없이 몰수하는 만큼 헌법이 보장한 재산권과 사익 보호, 무죄 추정·적법절차·과잉금지·비례의 원칙 등에 위배될 소지가 크다는 반론에 가로막힌 결과다. 공소권이 소멸한 사건에 새로 제재를 가하는 것은 헌법상 신뢰보호 원칙을 침해하는 소급입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절차적 통제장치를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면 남용될 우려도 있다. 독립몰수제를 도입한 국가에서도 이런 연유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정교한 제도 설계와 충분한 사회적 논의부터 이뤄져야 할 것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인 더불어민주당 박균택 의원이 지난달 ‘반인권적 국가범죄’에 한해 독립몰수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범죄의 주체는 공무원, 군 지휘관, 수사·공소 직무 등 특수직역으로 제한했고, 범죄의 종류도 살인, 헌정 질서 파괴, 뇌물, 범인 은닉, 증거 인멸, 위증, 국가보안법의 무고 등과 이를 가중처벌하는 죄로 한정했다. 내란을 비롯한 반인권적 국가범죄라는 일정 요건을 갖춘 예외적 사건에만 독립몰수제를 도입, 무차별적인 재산 박탈 우려를 덜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중대한 공익을 위해 역사적 책임을 묻자는 취지로 보면 기본권 침해 논란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 국가가 범죄수익의 존재와 몰수의 필요성을 명확하게 입증하도록 하고, 법원이 공정하고 엄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제도 설계부터 꼼꼼히 해야 한다. 그래야만 자의적인 몰수 집행의 위험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 몰수 대상자의 방어권을 보장하고, 이의제기 절차 등 권리 보호장치 마련은 두말할 나위 없다. 전두환 전 대통령 손자의 폭로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노소영씨의 이혼 소송 과정에서 비자금 의혹이 추가로 불거졌다. 국가폭력범죄의 장본인인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마지막 단죄는 불법재산 환수에 달려 있다. 마침 이재명정부가 독립몰수제를 국정과제로 삼았으니 천재일우의 호기 아닌가.


황계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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