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에서 정부로 주도권 이양
인프라 부족·사회적 편견 문제
무거운 책임 기억하고 새겨야
“나를 빛내줄 아이야.”
최근 종영한 드라마 ‘아이쇼핑’에서는 완벽한 아이를 갖겠다는 욕망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소재로 나옵니다. 유전적으로 우수한 아이를 선별해서 키우기 위해 불법 입양 카르텔로부터 아이를 쇼핑하듯 사들이고, 아이가 원하는 대로 자라나지 않으면 ‘환불’까지 불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희귀병이 걸린 아이의 엄마에게 환불을 제안하고, 받아들이지 않자 아이를 죽이라고 제안하는 등 다소 선정적이고 극단적인 표현으로 논란을 일으켰지만, 핏줄과 혈연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예민한 소재인 ‘입양’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드라마만큼 화제에 오르진 못했지만, 최근 개봉한 독립영화 ‘수연의 선율’도 입양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일곱 살 소녀 선율은 운 좋게도 어느 부부에게 입양되지만, 알고 보니 부부는 육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유튜브 후원금 모금이었고, 선율은 돈벌이에 이용되며 옷장에서 잠을 자는 비참한 생활을 이어나갑니다. 그러면서도 ‘또다시 버림받을까 두려워’ 불평 한마디 못하고 입을 다물고만 있습니다.
입양은 한 아이의, 아니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꾸는 매우 중대한 결정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입양이 지난 70여년간 복수의 민간기관에 의해 이루어지며 많은 허점과 문제점을 양산해 왔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습니다. 실제로 비혼주의자인 제 지인이 한부모 입양을 하기 위해 여러 민간기관에 접촉한 적이 있는데, 기관마다 한부모 입양 허용 여부와 조건이 천차만별로 달라 처음부터 무척 혼란스러웠다고 합니다.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입양 아동 학대 사건, 입양 정보 불법 유출, 국내 입양률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해외 입양률도 시스템의 실패를 명백히 보여 주는 증거들이었습니다.

이런 현실이 최근 입양법 개정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지난 7월 입양법 개정으로 인하여 입양 시스템의 주도권은 민간에서 정부로 넘어왔습니다. 앞으로 입양을 원한다면 아동권리보장원에 먼저 신청하고 예비 양부모 심사와 사후 관리까지 보건복지부와 지자체가 직접 개입합니다. 출생통보제와 위기임신보호출산제가 함께 도입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출생통보제는 부모의 출생신고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기존과 달리, 아예 병원에서 태어난 아동의 출생 정보를 지방자치단체에 자동으로 통보해 출생등록 누락을 방지하는 제도입니다. 출생통보제가 엄격하게 시행될 경우 미혼모나 10대 산모들이 병원에 오기를 기피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어 불가피한 경우 병원에서 가명으로 진료를 받고 출산한 후 국가에서 보호조치하게 하는 위기보호출산제를 함께 마련했습니다.
법 개정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입양 제도의 중심에 ‘부모의 필요’가 아니라 ‘아동의 권리’를 두겠다는 것입니다. 기관별로 들쭉날쭉하게 정한 기준에 따라 그때그때 조건에 맞는 사람에게 아이를 ‘내주는’ 것이 아니라, 가정법원에서 엄격한 심사를 거친 후 입양을 ‘허가’함으로써 적절하고 안전한 가정에 아이가 가게 될 확률이 더 높아졌습니다. 또한 입양 가정 내에서 구성원들의 적응, 아동 및 부모의 심리 상담, 애착 형성 지원 등을 체계적으로 규정함으로써 ‘사후 관리’도 철저히 하자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기대만큼 우려도 만만치 않습니다. 현장의 첫 번째 걱정은 전문성과 인프라 부족입니다. 체계화되지 않은 입양 기록들을 사회복지사들이 일일이 종이박스에 담아 옮기는 풍경은, 개정안 보도 기사에서 수차례 언급된 ‘디지털화’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전국적으로 각종 시설에서 분산 보관하고 있는 입양 기록이 26만 권에 달한다는데, 이걸 언제 다 옮기나 어디로 옮기나 걱정이 절로 듭니다. 현재는 고양시 지축역 근처에 있는 물류 창고를 임시 서고로 쓰고 있다고 하는데, 혹시 침수나 화재로 기록이 훼손되기라도 하면 수많은 사람의 ‘뿌리’가 없어질 수 있습니다.
인력 부족은 더 큰 문제입니다. 입양을 ‘국영화’시키면서 그 책임이 아동권리보장원으로 넘어왔는데, 인력 충원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개정법에 따르면, 아동권리보장원 소속 공무원은 입양 준비 기간 아이가 머물 수 있는 시설이나 가정 위탁을 주선하고, 예비 양부모의 적격성을 심사하고, 결연을 추진하고, 입양정책위원회에 심의 건을 올리고, 법원의 허가가 떨어져 입양이 성사되면 그다음에는 상황점검과 각종 지원까지 도맡아 하여야 하는데, 몸이 백 개라도 부족할 지경입니다. 드라마 속 불법 입양 카르텔만큼이나 현실에서는 행정 공백이 아이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목소리가 큽니다.
좀처럼 바뀌지 않는 사회적 편견도 입양 제도에서의 거대한 벽입니다. 법을 수십 번 개정한다고 해도 사람들의 인식은 여전합니다. “어머, 입양했어? 대단하다.”, “나라면 절대 못 할 것 같아.”, “내 자식도 키우기 힘든데 남의 자식을?” 같은 사람들의 반응이, 우리 사회에서 입양은 여전히 ‘특이한 선택’, ‘비주류 가족계획’임을 여실히 드러냅니다. 그러다 보니 국내 입양은 비공개가 일반적입니다. 심지어 사회적 낙인을 피하기 위해 법적인 절차를 회피하고 친생부모와 양부모 사이에서 개인적으로 ‘아기를 넘겨주고 친자로 출생신고’하는 사례도 없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입양아로 신생아를 선호하고, 3~4세가 넘어가고 나면 입양 성공률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결국 입양법 개정은 출발점에 불과합니다. 법이 아동의 권리를 선언할 수는 있지만, 그 권리를 실제 삶 속에서 실현하는 일은 제도 운용과 사회적 인식 변화에 달려 있습니다. 전문성을 갖춘 인력과 자원을 확충하고 입양 가정이 편견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각종 홍보와 교육 정책에도 충분한 예산을 편성해야 합니다. 완벽한 아이를 ‘소유’하겠다던 드라마 주인공의 집착이 비극으로 끝난 것처럼, 현실과 일치하지 않는 제도의 끝은 혼란과 파국임을 우리는 명심해야만 할 것입니다. 어린아이의 하루는 성인의 한 달과 같아서, 상처와 아픔으로 얼룩지면 평생을 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 무거운 책임을 우리는 기억하고 또 되새겨야만 합니다.
서아람 변호사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