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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으로 탈출하려는 검사들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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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8-25 15:19:46 수정 : 2025-08-25 18:03:01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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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1990년대 대법관을 지낸 어느 원로 법조인 A씨의 회고록에 나오는 일화다. 법원으로 실무 교육을 나온 어느 사법연수생에게 ‘자네는 이 다음에 판사를 할 건가, 아니면 검사를 할 건가’ 하고 물었더니 대뜸 “검사”라는 답이 돌아왔다. A씨가 이유를 묻자 이 연수생은 “법관이 되면 배석판사부터 해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그때만 해도 배석판사를 비롯해 서열이 낮은 신참 법관들은 여러 명이 사무실 하나를 공동으로 써야 했다. 반면 검사는 초임이라도 떡하니 독방이 제공되고, 휘하에 수사관 등 직원들을 거느리며 지휘할 수 있으니 판사보다 훨씬 낫다는 뜻이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전경. 세계일보 자료사진

사법시험에 합격해야만 법조인이 될 수 있었던 시절 사법연수원은 대한민국 법조인을 양성하는 유일무이한 기관이었다. 1971년 사법연수원 개원 이래 모든 판사·검사·변호사는 이곳에서 2년간 훈련을 받고 법조계에 진출할 수 있었다. 나이 지긋한 전직 검사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 중 하나가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연수생들 사이에서 판사보다 검사가 훨씬 더 인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세속적인 의미의 ‘출세’(出世)를 감안한다면 능히 그럴 수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 정권과 그 뒤를 이은 전두환 대통령의 제5공화국을 거치며 검사 인기는 뚝 떨어졌다. 검찰이 반(反)민주주의 세력의 ‘뒷배’ 역할에만 충실하다는 실망이 확산한 결과일 것이다.

 

“사법연수원 수료생들의 ‘검사 기피·판사 선호’ 경향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1994년 1월 조선일보 사회면에 등장한 기사 첫머리가 이렇다. 보도를 한 담당 기자는 “검사직은 사회의 전반적 민주화 추세와 함께 ‘바람’을 타기 쉽고 과거와 같은 ‘끗발’도 유지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란 분석을 내놓았다. 연수원 수료 성적을 기준으로 최상위권에 든 이들이 판사 정원을 모두 채운 다음 그 아래의 수료생들이 비로소 검사를 지망한다는 의미다. 사시가 없어지고 연수원 대신 전국 25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법조인을 배출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우수한 법률가들이 법원과 검찰 중 어디로 더 많이 가느냐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전경. 세계일보 자료사진

올해 일반 법조 경력자 법관 임용 절차에서 총 153명이 임명 동의 대상자로 선정된 가운데 그중 32명이 검사 출신이라고 한다. 지난 2024년(14명)의 2배 이상으로 크게 늘면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대체 왜 그럴까. 이재명정부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검찰 개혁을 명분 삼아 현 검찰 조직을 해체하려 하기 때문이다. 검찰청을 기소 및 공소 유지 업무만 전담하는 ‘공소청’으로 축소하고, 중대 범죄 수사는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에 맡기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엄정한 수사를 통해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는 각오로 검찰에 입문한 젊은 검사들에게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면목이 없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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