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교체기마다 코드 인사 논란
이사 인원 확대·사추위 도입 골자
부칙따라 석 달 내 새 이사진 꾸려야
與, EBS법 개정안도 본회의 상정
野 “공영방송 확증편향 입김 우려”
방송문화진흥회법(방문진법)이 2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정권 교체기마다 끊이지 않았던 MBC 장악 논란을 어느 정도 해소할 길이 열리게 됐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은 그동안 여야가 6대3 구도로 갈라먹는 방식으로 구성돼 역대 정권마다 입맛에 맞는 방문진 이사 및 MBC 사장 교체를 둘러싸고 잡음이 많았다.
특히 이날은 MBC의 정치적 독립과 공정방송을 위한 파업을 주도하다 해고된 뒤 복막암 말기 판정을 받고 눈감은 이용마 기자의 6주기여서 의미를 더했다. 다만 앞서 KBS 지배구조와 관련한 방송법 개정안 때 일각에서 우려한 것처럼 친여성향의 노조와 시민사회단체의 입김에 휘둘리지 않고 법안 취지를 살리는 제도 운영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방문진법은 방문진의 설립과 운영에 관한 법률이다. 1988년에 제정된 이 법은 MBC의 독립적 운영을 위해 방문진이 MBC 지분 70%를 보유하고 사장 임명과 경영 감독 역할을 맡도록 규정하고 있다. 방문진법을 근거로 방문진 이사회는 여당 측 6명, 야당 측 인사가 3명으로 구성됐다. 이에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방송 장악 논란이 불거지기 일쑤였다.
이명박정부 시절이던 2012년 MBC를 비롯해 KBS와 YTN 노조가 언론 자유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서고 상당수 기자가 해직된 사태가 대표적이다. 당시 언론노조 MBC본부 홍보국장으로 파업을 주도하다 해직된 이용마 기자는 언론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표이던 2016년 12월 암 투병 중인 그를 찾아가 MBC를 비롯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다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듬해 집권한 문재인정부와 민주당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오히려 방문진과 MBC를 손아귀에 지려 한다는 인상만 풍겼다.

다수 여당이었음에도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에 미온적이었던 민주당은 2022년 대선에서 패해 정권을 넘겨주게 되자 ‘방송을 국민의 품으로 돌려주기 위한 정상화’라고 주장하며 방문진법 개정 추진에 나서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정치적 목적의 방송 장악”이라며 표결에 불참하거나 반대 표를 던지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도 2023년 12월과 지난해 8월 두 차례에 걸쳐 방문진법 개정안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당시 대통령실은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을 훼손시키려는 야당(민주당)의 법안 강행 처리에 대한 불가피한 조치”라며 “여야 협의와 사회적 공감대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채 정략적으로 처리됐다”고 설명했다.
방문진법이 진통 끝에 통과하면서 방문진 이사회 구성의 다변화와 MBC 사장 임명 절차의 대중적 참여 확대 등 지배구조가 실질적으로 달라지게 된다. 방문진 이사 13명은 국회 교섭단체 추천 5명과 MBC 시청자위원회 추천 2명, MBC 임직원 추천 2명, 방통위 규칙으로 정하는 3개 미디어학회 추천 2명, 방통위 규칙으로 정하는 2개 변호사단체 추천 2명으로 이뤄지고, 방문진 이사 임명권은 방송통신위원회가 갖는다.
새로 도입된 MBC 사장후보추천위원회는 성별·연령·지역 등을 고려해 100명 이상의 위원이 참여한다. 공직선거법상 등록된 여론조사 기관 중 방통위 규칙으로 정하는 기준에 충족하는 기관이 구성하게 된다. 사추위는 ‘3명 이하 복수’ 사장 후보를 추천하고, 방문진이 14일 이내 특별다수제(5분의 3 이상 찬성)와 결선투표제를 거쳐 뽑는다. 방문진법 개정안 부칙은 법 시행 후 3개월 이내에 방문진을 새로 구성하도록 해 기존 방문진 이사와 MBC 사장은 후임자가 임명될 때까지 직무를 수행한다.

방송계 한 관계자는 “이사 추천 기관이 다양해지면서 정치권의 입김이 약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뤄진 사추위도 새롭게 생겨 MBC 사장 후보에 대한 중립성이 지켜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는 성명을 통해 “이용마 기자의 한결같은 외침, ‘공영방송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씨앗이 이제 싹을 틔우고 있다”고 방문진법 통과를 환영했다.
다만 구체적 지침이 없다는 건 문제다. 예컨대 사추위를 어떤 식으로 구성하며, KBS 등 다른 공영방송 사추위와 겹쳐도 되는지, 명단을 공개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 이와 관련, 친여성향 언론노동조합과 시민단체가 사추위 등에 개입하면 결국 정권 입맛에 맞는 사장 후보가 추천되는 사태가 발생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방문진법 통과에 이어 한국교육방송공사법(EBS법) 개정안이 이날 본회의에 상정되자 EBS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필리버스터에 나선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은 “민주노총 언론에 방송의 편성과 보도, 경영을 맡길 경우 정부 여당에도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며 “우리가 중심을 잡지 못하면 유튜버, 소셜미디어에 이어 공영방송마저 확증 편향에 사로잡힌 집단에 의해 좌우되고, 국가적 의제까지 흔들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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