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딜 대신 스몰딜 반복해 비핵화 전략
‘北 비핵화’ 대신 ‘한반도’ 완곡한 표현
북·미 싱가포르 합의 상기 의도 보여
핵 동결 범위·검증법 등 이견 불가피
일각선 “北핵보유 인정하는 셈” 신중
한·미 정상회담 논의·발표 수위 촉각
이재명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핵 해법으로 비핵화를 목표로 하되 핵 동결 합의에서 시작하는 단계적 접근법을 제시하면서 그 실현 가능성에 관심이 쏠린다.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데는 이와 같은 ‘스몰딜’ 방식이 현실적이지만, 북한이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낮은 데다 첫 단계인 핵 동결부터 달성하기가 간단치 않아 북핵 문제의 돌파구가 되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21일 공개된 일본 요미우리신문과 인터뷰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1단계는 핵과 미사일에 대한 동결, 2단계는 축소, 3단계는 비핵화”라는 3단계 접근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북핵의 단계적 동결·감축과 제재 일부 해제 등 대가를 맞교환하는 ‘스몰딜’을 반복해 최종적으로 북한 비핵화 상태에 도달하겠다는 전략이다.

정부의 이러한 구상에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제재 해제·체제 보장을 한 번에 맞바꾸는 ‘빅딜’ 방식은 추진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깔렸다. 북한이 한·미에 맞서 체제를 지키는 유일한 수단인 핵을 단번에 제거하라는 요구를 수용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밝힌 “비핵화는 단기에 해결할 수 없는 복합적이고 매우 어려운 과제임을 인정한다”는 발언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또한 북핵 정책의 방향성에 대해 윤석열정부가 주로 언급한 ‘북한 비핵화’ 대신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썼다.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여지를 줄이면서 북한도 동의했던 2018년 북·미 싱가포르 합의에 들어간 ‘한반도 비핵화’ 표현을 상기시키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이를 두고 이 대통령이 제시한 단계적 비핵화 방안이 오는 25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어느 정도 비중으로 논의되고 어떤 수위로 발표될지가 향후 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을 가늠하는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과 북한 모두 북핵 동결·군축을 위한 협상에는 열려 있는 분위기가 감지되기 때문이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달 28일 발표한 대미 담화에서 “핵을 보유한 두 국가가 대결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결코 서로에게 이롭지 않다”며 “새로운 사고를 바탕으로 다른 접촉 출로를 모색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고 핵 군축 등을 논의하는 대화에는 응할 수 있다는 속내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2기 취임 이후 기회가 될 때마다 북한을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핵보유국)’로 칭하면서 스몰딜 협상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 바 있다.
다만 미국이 핵 동결 협상을 추진하더라도 비핵화를 최종 목표로 삼는다면 북한이 쉽사리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북한은 비핵화 요구가 “대방(상대)에 대한 우롱”(김여정 지난달 담화)일 뿐더러 “실천적으로나 개념적으로 불가능”(김여정 지난 4월 담화)하다고 누누이 밝혀 왔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이날 내놓은 단계적 비핵화 방안에 대해서도 북한은 담화 등을 통해 강하게 반발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첫 단계인 핵 동결 범위와 대가, 검증 방식에 합의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9년 북·미 정상의 하노이회담이 영변 핵 시설만 동결하겠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강선 등의 핵시설도 포함해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노딜’로 끝난 바 있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장은 “핵 동결을 하려면 일단 북한이 핵시설 신고부터 해야 하는데, 하노이회담에서 이 단계에서 막혔다”며 “또 현재 북한은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는, 트럼프 1기 때와는 다른 북한이라 ‘핵 동결’이라는 개념으로 대화의 시동을 걸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에 응하더라도 한국엔 고민거리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이 스몰딜에 합의한다고 해서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까지 이행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어서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문제는 우리는 핵 동결이 ‘입구’인데 북한은 이를 ‘엔딩 포인트’로 생각한다는 것”이라며 “스몰딜 구상이 현실화한다고 하더라도, 핵 동결의 신고·검증·사찰의 단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 목표에 합의하느냐가 과제로 남는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스몰딜을 추진하는 것 자체가 북한의 핵 보유 사실을 인정하는 꼴이라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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