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사건 관련 의혹 등을 수사하는 채해병 특별검사팀(특검 이명현)은 임기훈 전 대통령실 국방비서관으로부터 자신이 ‘VIP(윤석열 전 대통령) 격노’를 국방부와 해병대사령부에 전달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이번 진술은 윤 전 대통령의 ‘격노’가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를 바꾸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보여줄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채해병 특검팀이 세 특검팀 중 가장 먼저 1차 수사기간 연장 계획을 발표한 상황에서 남은 기간 대통령실의 수사 개입 의혹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채해병 특검팀은 임 전 비서관을 참고인으로 부른 지난달 25일 조사에서 “윤 전 대통령이 2023년 7월31일 대통령실 외교안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격노한 뒤 그 자리에서 바로 대통령실 내선 전화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과 2∼3분 정도 통화하면서 그를 질책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알려졌다. 통화 후 임 전 비서관은 회의실을 나와 이 전 장관,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 박진희 전 군사보좌관, 김계환 전 해병대 사령관 4명에게 차례로 전화해 윤 전 대통령이 격노한 과정 등을 설명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통령실과 국방부, 해병대사령부 관계자들의 통신기록을 보면 이 전 장관은 2023년 7월 31일 오전 11시 54분 대통령실 내선전화로 걸려 온 전화를 받고 약 3분간 통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 전 비서관의 이번 진술은 윤 전 대통령의 ‘격노’가 채해병 순직 사건 초동조사결과 개입으로 이어졌다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임 전 비서관의 통화 직후 이 전 장관은 김 전 사령관에게 전화해 예정돼 있던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결과를 경북경찰청으로 넘기려던 계획을 멈추게 하고, 조사결과를 공식적으로 국회와 언론에 브리핑하려던 일정도 취소했다. 또 같은 날 오전 직무배제 조치당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을 휴가 처리하고 정상 근무하도록 지시했다. 임 전 사단장은 채해병이 속한 부대 전체를 총지휘하는 상관으로, 초동 조사결과에서 주요 혐의자 중 한명으로 지목됐다가 윤 전 대통령의 격노 이후 혐의자에서 빠진 인물이다.
채해병 특검팀은 ‘수사 외압’ 의혹을 규명할 첫 단추를 끼우며 수사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특검팀은 앞선 소환조사와 압수수색에서 ‘VIP 격노설’를 확인했다. 격노 회의 참석자 7명 중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당시 대통령실 경호처장)을 제외한 5명에게서 윤 전 대통령의 격노를 목격했다는 취지를 확보했다. 또 해당 시기에 대통령실과 국방부, 경북경찰청 등의 통화내역도 가지고 있다.
한편 채해병 특검팀은 김건희 특별검사팀(특검 민중기), 내란 특별검사팀(특검 조은석) 등 세 특검 중에서 가장 먼저 수사기간을 1차 연장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다음주에 국회와 대통령실에 연장 사유를 서면으로 제출할 예정이다. 이번 30일 연장으로 특검팀은 수사 기간이 약 40일 남을 예정이다. 이 기간 수사 외압 의혹을 포함해 임 전 사단장의 ‘구명 로비’ 의혹, 이 전 장관의 호주대사 도피 의혹 등 세 가지 의혹의 윤곽을 잡기 위해 관련자들의 진술을 확보할 방침이다. 정민영 채해병 특검보는 이날 브리핑에서 “기초적인 사실관계는 많이 (확인)돼있지만 실제로 당사자들의 진술을 통해서 확인하는 과정이 오래 걸린다”며 “아직 장관, 차관, 그리고 (대통령실 등) 그 위 관계자들이 이를 어떻게 보고 받았고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까지 확인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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